'KBL 살아있는 전설' 함지훈, 울산에서 아름다운 퇴장 작성일 04-03 12 목록 <strong class="media_end_summary">18년 한 팀, 프랜차이즈 스타의 완벽한 마침표</strong><table class="nbd_table"><tbody><tr><td><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47/2026/04/03/0002510629_001_20260403141609104.jpg" alt="" /></span></td></tr><tr><td><b>▲ </b> KBL을 대표하는 토종 빅맨으로 롱런한 함지훈이 올시즌을 마지막으로 코트를 떠난다.</td></tr><tr><td>ⓒ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td></tr></tbody></table><br>함지훈(42, 197.4cm)이 18년 프로 커리어의 마지막을 맞이한다.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는 오는 8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있을 KBL 정규리그 최종전, 창원 LG 세이커스와의 경기에서 그의 공식 은퇴식을 진행한다고 발표했다.<br><br>2007년 데뷔 이후 단 한 팀에서만 뛰며 리그를 대표하는 빅맨으로 자리 잡은 함지훈은 센터(혹은 파워포워드)로서 여러 가지 약점이 많은 선수였지만 자신만의 강점을 앞세워 역사에 남을 커리어를 완성한 유니크한 빅맨이다.<br><br>함지훈의 커리어를 설명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꾸준함'이다. 데뷔 이후 오랜 기간 평균 두 자릿수 득점을 유지했고, 리바운드와 어시스트에서도 안정적인 수치를 기록하며 팀의 중심을 지켜왔다.<br><br>특히 빅맨임에도 불구하고 어시스트 능력에서 두각을 나타낸 점은 그의 가장 큰 특징이다. 통산 어시스트 수에서 상위권을 기록한 몇 안 되는 포워드/센터 자원으로, 공격 전개 능력을 갖춘 '포인트 포워드형 빅맨'의 대표 사례로 평가받는다.<br><br>또한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 같은 큰 무대에서도 기록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이는 선수로서의 그의 가치를 더욱 높여준다. 중요한 순간일수록 경기 영향력이 커지는 선수였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br><br>우승 경험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현대모비스의 왕조 시절, 핵심 멤버로 활약하며 KBL 챔피언결정전 5회 우승이라는 대업을 달성했다. 2009~10시즌에는 정규리그 MVP와 플레이오프 MVP를 동시에 석권하며 리그 최고의 선수로 우뚝선 바 있다.<br><br>매 시즌 팀 성적이 출렁이는 상황에서도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고, 이는 감독과 동료들이 그를 가장 신뢰하는 이유였다. 모비스 왕조하면 흔히 양동근을 언급하지만 함지훈 역시 그 못지않은 공헌을 했고 그러한 부분을 인정받고 있다.<br><br><strong>크지도, 빠르지도, 높이 뛰지도 못했지만...잘했다</strong><br><br>함지훈은 일반적인 빅맨과는 거리가 있다. 2m가 넘는 장신포워드가 대세가 된 지금 그의 신장은 빅맨치고는 작은 편이다. 거기에 스피드가 특출나게 빠르거나 점프가 높은 것도 아니다. 중앙대학교 주축 센터로 활약했음에도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0순위까지 밀린 이유다.<br><br>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지나친 프로 관계자들은 땅을 치고 후회했다. 확실한 장점을 바탕으로 리그 최고의 토종 빅맨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일단 'BQ(바스켓 아이큐)'와 기본기가 확실했다.<br><br>거기에서 나오는 플레이는 효율 그 자체였다. 하이포스트에서 볼을 잡은 뒤 수비를 읽고, 컷인하는 동료에게 정확한 패스를 공급하는 장면은 시그니처 무브 중 하나였다. 이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경기 전체를 읽는 시야와 판단력이 결합된 결과였다.<br><br>또한 스크린 플레이에서도 탁월했다. 단순히 몸을 대주는 수준을 넘어, 타이밍과 각도를 통해 공격 기회를 극대화했다. 이러한 디테일은 팀 공격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핵심 요소였다.<br><br>그렇다고 개인 득점력이 약한 것도 아니었다.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다양한 골밑 기술을 갖추고 있었는데 특히 피벗 플레이는 대놓고 구사해도 막아낼 상대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상대를 몸싸움으로 밀어냈던 것을 비롯 다양한 변칙 타이밍을 통해 수비 리듬을 흔들었으며 손끝 감각까지 좋았다. 포스트에서 볼을 잡고 공격을 시도하면 '한 골 아니면 파울'이라는 말까지 있었을 정도다.<br><br>수비도 약하지 않았다. 특유의 센스에 더해 '위치 선정'이 워낙 좋았기 때문이다. 블록슛에서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상대 공격을 미리 차단하는 움직임과 리바운드 위치 선정에서 강점을 보였다. 이는 신체조건과 운동능력에 의존하지 않고도 오랜 기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다.<br><br>혼혈 농구선수로 국가대표까지 지낸 이승준(미국명 에릭 산드린)은 필자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함지훈이 10cm 커졌다면 NBA에 진출했을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결국 함지훈은 '신체 조건이 부족해도 농구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였다. 이는 많은 후배 선수들에게 하나의 기준이자 방향성을 제시했다.<br><br><strong>국가대표로서의 아쉬움, 하지만 리그에서는 전설</strong><br><br>국가대표 커리어는 분명 아쉬움이 남는다. 국제대회에서는 더 크고 빠른 빅맨들과의 경쟁 속에서 역할이 제한됐고, 기대 만큼의 임팩트를 남기지 못했다는 혹평이 많다. 그러나 이는 그의 커리어 전체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KBL이라는 무대에서 만큼은 누구와 비교해도 손색 없는 완성형 선수였기 때문이다.<br><br>득점, 리바운드, 패스, 경기 운영 능력까지 모든 요소를 갖춘 '올라운드 빅맨'으로서 팀성적과 개인 기록을 모두 잡아내며 시대를 대표했다. 특히 팀 플레이 위주의 이타적인 농구 스타일은 동료들을 함께 살려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br><br>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다. 수많은 선수들이 등장하고 사라지는 동안, 그는 늘 같은 자리에서 팀을 지켰다. 부상과 세대교체, 전술 변화 속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재정의하며 살아남았다.<br><br>때문에 그의 은퇴는 단순히 잘했던 한 선수가 떠나는 정도가 아니다. KBL이 한 단계 발전해오는 과정 속에서, '어떻게 하면 오랜 시간 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보여준 교과서가 코트를 떠나는 순간인 것이다.<br><br>18년 동안 쌓아온 시간은 기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화려하지 않아도, 압도적이지 않아도, 결국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이름 함지훈. 그의 마지막 시즌은 끝이 아니라, 오랫동안 회자될 기준의 시작이다.<br> 관련자료 이전 [ET톡] '하드웨어'에 갇힌 연구실 안전, 이제는 '사람'과 '보안'을 향해야 04-03 다음 전원 중화권 출신 보이그룹까지…서바이벌 데뷔조 다변화, 왜?[스타in 포커스] 04-03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