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시가 4배의 도박?…故 최종현 4271억으로 산 것은 ‘미래’였다 작성일 04-05 22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SK, 결단의 DNA] 전략적 선택…기업 정당성 확보</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BXPOfj9UWF"> <p contents-hash="586d956b57c4c903e163dbe17366f021ebdafd8fd6db6744db831f6ac31a9aa5" dmcf-pid="bZQI4A2uSt" dmcf-ptype="general"><strong>SK텔레콤이 올해로 창사 42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오랜 시간 '특혜'라는 고정된 프레임에 가려져 왔지만, 사실 산업적 열망과 당시의 예민한 정치 지형이 복잡하게 얽힌 기록이기도 합니다. 1992년 압도적인 심사 점수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만에 사업권을 내려놓아야 했던 사례와, 그 과정에서 소신을 지키고자 했던 공직자들의 고뇌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strong></p> <p contents-hash="147154dff361865075114f59be44d40dd388dc082e07c8a41e26c7fbf93bab7c" dmcf-pid="K5xC8cV7v1" dmcf-ptype="general"><strong>42주년을 맞이해 정치가 멈춰 세웠던 시간, 기업의 정공법으로 되살려온 40년의 궤적을 조심스럽게 복기하고자 합니다. 1992년의 자진 반납과 1994년의 고가 인수가 남긴 '정당성'의 가치, 그리고 최종현 선대회장의 결단이 최태원 회장의 AI 혁신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조명합니다.</strong></p> <div contents-hash="246ef4a55798e1513d058408d8806f86e1140055b2c9defb66ced1fb2893ff88" dmcf-pid="91Mh6kfzh5" dmcf-ptype="general"> <strong><편집자주></strong> </div>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3835362390b071bdacc0c1c02a682efba4af0737f76dd0f59276053b4392dc51" dmcf-pid="2tRlPE4qyZ"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4/05/552796-pzfp7fF/20260405060017803hjax.png" data-org-width="640" dmcf-mid="b5rvxw6bvg"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05/552796-pzfp7fF/20260405060017803hjax.png" width="658"></p> </figure> <p contents-hash="20409402bf7be3da0a7224b59a36699adb368656875ba9c4314ae5a84e7b358e" dmcf-pid="VFeSQD8BSX" dmcf-ptype="general">[디지털데일리 김문기기자] 1994년 1월 17일, 대한민국 재계의 시선이 다시 한번 선경(SK)으로 쏠렸다.</p> <p contents-hash="14df1bd956202622d76c93cb903200df8afefd213d51ac19d0468b9be914de2f" dmcf-pid="f3dvxw6bCH" dmcf-ptype="general">문민정부 출범 후 재개된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가장 강력한 후보였던 선경이 돌연 ‘사업 참여 포기’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1992년 8,388점이라는 압도적 실력을 증명하고도 눈물로 사업권을 반납했던 그들이, 다시 찾아온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 셈이다.</p> <p contents-hash="333af6e5d13f3ec3e5a3b1bcf5fc54a04989d88339a6142c992228a07b944d1a" dmcf-pid="4A5MG9yOCG" dmcf-ptype="general">이 결단은 단순한 포기가 아니었다. 최종현 선경 회장은 “심판은 선수로 뛸 수 없다”는 원칙을 앞세워 나아갔다. 당시 전경련 회장이었던 그는 정부로부터 ‘민간 자율 조정’이라는 중책을 부여받은 상태였다. 자기가 주관하는 심사에서 자기 기업이 뽑히는 ‘셀프 특혜’ 논란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그는 10년을 준비한 자식 같은 사업권을 또 다시 광야로 던졌다.</p> <p contents-hash="73c8528010e673fe981683ac509eca4cc48e25c2da7d6c6ad3b4e96b4b2c3a1f" dmcf-pid="8c1RH2WICY" dmcf-ptype="general"><strong>◆ 사업 참여 포기에 너도나도 말리는 총수들…“어떠한 오점도 남기지 않겠다”</strong></p> <p contents-hash="8c1490bf66826230101e7067ffcf15cc0050dbedf1de7e7b9d537696ee3186f4" dmcf-pid="6kteXVYCSW" dmcf-ptype="general">1994년 1월 15일,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초청으로 한남동 승지원에 모인 재계 수장들은 과열 경쟁을 피하고 전경련이 단일 컨소시엄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이른바 ‘승지원 결의’였다. 그러나 조정의 키를 쥔 최종현 회장의 고민은 깊었다. 선경이 참여하는 순간, 조정의 공정성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었다.</p> <p contents-hash="d698366d0081c9b5056274e4aea41d64da876a986a12cad8e6bc7dc733c9a378" dmcf-pid="PEFdZfGhvy" dmcf-ptype="general">이틀 뒤, 최 회장은 결단을 내렸다.</p> <p contents-hash="dad8f841e3b2b6bdbac9dd9f55a5120412c69fc01c6637a5b1512723b65b374e" dmcf-pid="QD3J54HlCT" dmcf-ptype="general"><strong>“전경련 회장으로서 공정한 조정을 위해 선경은 제2이통사 지배주주 경쟁에서 빠지겠다.”</strong></p> <p contents-hash="21c8977456f266a62cf3ce7c5828866fa809280aaecc06157da0c27a51de742f" dmcf-pid="xw0i18XSlv" dmcf-ptype="general">1992년의 아픔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기업가의 명예를 건 승부수였다. 경쟁사였던 포항제철(포스코)과 코오롱에 길을 열어준 이 용퇴는 재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그러나 최종현의 시선은 이미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p> <div contents-hash="33794f3b0312397b4a1f0a805f4204165634fc87e776ba98b120f0f0db323a36" dmcf-pid="yBNZLlJ6TS" dmcf-ptype="general"> 허가 사업이었던 제2이동통신사 선정이 정치적 외풍에 취약하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오직 자본과 가치로만 결정되는 ‘시장 입찰’이었다. 정부는 제2이통사 선정과 동시에 국영기업인 한국이동통신(KMT)의 민영화를 추진하며 지분 23%를 경쟁입찰에 부쳤다. 사실 이 역시도 외풍으로 무너졌던 1차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반면교사 삼아 계획한 방어 전략이었다. </div>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f0c884872d96483ec6656746b5588e032ad5387068673ee84113c58e98491ecf" dmcf-pid="Wbj5oSiPyl"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4/05/552796-pzfp7fF/20260405060019151ehbx.png" data-org-width="640" dmcf-mid="9ZDlPE4qvL"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05/552796-pzfp7fF/20260405060019151ehbx.png" width="658"></p> </figure> <p contents-hash="69f304229efff35d0dee065cb1ce2825145f37bff495c2fa3e7e3a2caacbf08d" dmcf-pid="YKA1gvnQWh" dmcf-ptype="general"><strong>◆ 특혜를 잠재운 ‘무리한 가격’, 현재가 아닌 미래를 샀다</strong></p> <p contents-hash="90ffb9960e49601ce60e939372099b18244705173975763c660c930d4f4efaf9" dmcf-pid="G9ctaTLxWC" dmcf-ptype="general">1994년 1월 24일 입찰일. 문제는 따로 있었다.</p> <p contents-hash="878bd5f471772ef7822203ec5fcce3336e67f075229b9d739796f7451e5d5168" dmcf-pid="H2kFNyoMlI" dmcf-ptype="general">시장이 예측한 낙찰가는 주당 20만 원대 초반. 당시 한국이동통신의 시가는 8만 원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선경이 써낸 금액은 경이로웠다. 주당 33만 5,000원. 총액 4,271억2,500만원. 시가보다 무려 4배나 비싼 가격, 시장 예측보다 1,000억 원 이상을 더 얹어준 이 ‘미친 낙찰가’에 재계는 경악했다.</p> <p contents-hash="7b685caf08765f964b7049a67e2bb5e73a8c25eb99f4744ef6e7365f449e91f6" dmcf-pid="XVE3jWgRWO" dmcf-ptype="general">곧장 “승자의 저주에 빠질 것”이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하지만 최종현 회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가 참모들에게 한 일갈은 아직까지도 회자된다.</p> <p contents-hash="d8e58c70e744bfae16d913a77590907be3b2360921c4372bac4d344a6b3a073c" dmcf-pid="Z8rUkHjJls" dmcf-ptype="general"><strong>“지금 2,000억 원을 더 주고 사는 것은 나중 일을 생각하면 오히려 값싸게 사는 것이다. 회사 가치는 우리가 키워가면 된다. 우리는 기업을 산 것이 아니라 미래를 산 것이다.”</strong></p> <p contents-hash="ec261599d63f51069c7f2850579757495b94cd30005f8039025eb8ef157b80eb" dmcf-pid="56muEXAivm" dmcf-ptype="general">최종현 회장이 시가의 4배를 지불한 것은 고도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누구도 “사돈이라서, 정권의 배려라서 싸게 샀다”는 말을 입에 담지 못하게 하려는 ‘방탄 인수’와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리는 무리였다. 4,271억원이라는 금액은 당시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자칫 그룹 전체가 휘청일 수 있었다.</p> <p contents-hash="bfdaaa20d371662dfb684fe0bc5da360a692f44a61d6b685d02fdbd6aa8e93a8" dmcf-pid="1Ps7DZcnyr" dmcf-ptype="general">물론, 명확한 이득은 있었다. SK의 통신 진출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정치적 부채’를 일시에 청산할 수 있는 수단 중에 가장 강력한 선택지였다. 한마디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기업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였다.</p> <div contents-hash="00cd6aa04d2e91f078525d39f65792b6351bf42ab11c6780c553baa1f6a9e5f1" dmcf-pid="tQOzw5kLCw" dmcf-ptype="general"> 그렇게 최종현 회장은 이동통신 기업으로 들어서기 위한 소위 가장 비싼 입장료를 기꺼이 지불했다. 이는 훗날 최태원 회장이 하이닉스 인수 당시 쏟아졌던 우려를 뚫고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강력한 경영 유산(Heritage)과 맥을 함께 한다. </div>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47c3776ef2215ee5353ec4e81d086cccc863be19806be194fd95170e88a4a903" dmcf-pid="FxIqr1EoTD"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4/05/552796-pzfp7fF/20260405060020541plii.png" data-org-width="640" dmcf-mid="qUnWesx2S3"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05/552796-pzfp7fF/20260405060020541plii.png" width="658"></p> </figure> <p contents-hash="170795fbf8e844f6c6617b0464d00efec8de2ec64ddc9b2f7f7e5ebff21e26a2" dmcf-pid="3MCBmtDgyE" dmcf-ptype="general"><strong>◆ 마침내 민간 주도 이동통신 시대의 개막</strong></p> <p contents-hash="10227b821670f702a8965fb12b88c92f1979cfe95b00b190921efb1d940a60e7" dmcf-pid="0RhbsFwavk" dmcf-ptype="general">입찰 성공 후 반년 만인 1994년 7월 7일, 한국이동통신 임시주주총회에서 손길승 부회장이 대표이사로 선임되며 경영권 인수가 마무리됐다.</p> <p contents-hash="dee841541e57275a44c20f7cf9f94cf353fef85191bfbafec255f0afe1cecc5f" dmcf-pid="pelKO3rNWc" dmcf-ptype="general">취임식에서 손 대표는 “민간 기업의 활력과 선경의 경영 역량을 접목해 한국이동통신을 세계 일류의 종합정보통신기업으로 도약시키겠다”고 선언했다.</p> <p contents-hash="6cb327459088677c620c44617557f7caadbc8d4f7e23f4c6382add01453b6b0b" dmcf-pid="UdS9I0mjlA" dmcf-ptype="general">공기업 특유의 경직성을 벗어던진 한국이동통신은 이듬해인 1995년, 매출의 10%를 R&D에 쏟아붓겠다는 약속을 실천하며 기술 자립에 박차를 가했다.</p> <p contents-hash="2763e60c2b7717a960dd8218b3adc5c6a25107da8b5b4558279d4afee8ca9c67" dmcf-pid="uJv2CpsAhj" dmcf-ptype="general">그리고 1992년 격량의 파도 속에서 눈물로 사업권을 반납했던 그 청년 경영인 최태원 부장은, 이제 경영진의 일원으로서 아버지가 산 ‘미래’를 ‘현실’로 바꾸는 최전방에 서기에 이르렀다.</p> <p contents-hash="1b0ecd8934698e4e908255d0f6720bf01a92d62321b1cf7a7b70b176a9575078" dmcf-pid="7iTVhUOcSN" dmcf-ptype="general">결과적으로 1994년의 4,271억원은 단순한 매수금이 아니었다. 정치가 산업을 짓밟았던 야만의 시대를 끝내고, 오직 실력과 자본으로 승부하는 ‘한국형 통신 자본주의’의 당당한 출범 신호탄이었다.</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디지털데일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데이터 노리는 숨은 공격자 ‘악성코드’… 바이러스에서 랜섬웨어까지 [보안TMI] 04-05 다음 자사몰 패싱하는 ‘제로클릭’ 공습, 플래티어가 꺼내든 반격의 카드는? 04-05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