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과 돈 때문에…닉슨은 1980년대 화성 가려던 계획 접었다 작성일 04-05 14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달 착륙으로 체제 승리 후 탐색 동력 약화…베트남전 와중 예산도 부담</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H9wgV5kLCf">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14ac84cb5b82ea348ced78b1752f82c6ee074ca78405cdc00a3a09e753cf2003" dmcf-pid="X2raf1EohV"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1969년 7월24일(현지시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지구 귀환 뒤 임시 격리시설에 머물고 있는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들과 만나고 있다. NASA 제공"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4/05/khan/20260405205527882qhgy.jpg" data-org-width="1200" dmcf-mid="GGx9Xw6bT4"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05/khan/20260405205527882qhgy.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1969년 7월24일(현지시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지구 귀환 뒤 임시 격리시설에 머물고 있는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들과 만나고 있다. NASA 제공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073f199fcec8b125fb2091b877394167007a485294648bd402c65d5ae508b61c" dmcf-pid="ZVmN4tDgS2" dmcf-ptype="general"><br>반세기 만의 달 유인 탐사를 달성하기 위해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에서 발사된 아르테미스 2호를 계기로 우주 개척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이번 발사가 성공하면 2028년 월면에 사람이 발을 딛고, 2030년대에는 달 기지가 건설될 예정이다.</p> <p contents-hash="daa2f6e39613043b08695c71d97076232903a63008b566e5d64246ce3048922b" dmcf-pid="5Zef1sx2W9" dmcf-ptype="general">하지만 알고 보면 인류의 우주 진출은 이보다 훨씬 빨라질 수 있었다. 1960년대 말 미국 정부는 1980년대를 목표로 월면 기지 건설, 화성 유인 착륙을 검토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추진되지 못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냉전’과 ‘돈’이었다.</p> <p contents-hash="cdb2d0d5dad5274d3c93460fbf5f044df9d7345e4b84fdcc6c5631e3674a04f0" dmcf-pid="15d4tOMVCK" dmcf-ptype="general">2024년 발간된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공개 자료에 따르면 1969년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향후 자국의 우주개발 방향을 수립하기 위한 자문조직인 ‘우주 태스크 그룹(STG)’을 구성했다. STG에는 부통령과 NASA 고위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p> <p contents-hash="b5c1af8cbf4e4d0fe1ed37e58db581c17d2943b0c37873480470c126823464d1" dmcf-pid="t1J8FIRfTb" dmcf-ptype="general">같은 해 STG는 보고서를 통해 1970년대부터 미국 우주개발 속도를 크게 높이는 안을 주요 선택지 중 하나로 꼽아 닉슨 대통령에게 제시했다. 핵심 목표는 1980년대까지 월면에 기지를 구축하고, 화성 지표면에 우주비행사를 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닉슨 대통령은 이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다.</p> <p contents-hash="7715ad3c45386c0bdab638bc545df2525f9d3cd9e7c0831e63b7f4dd1613fa28" dmcf-pid="Fti63Ce4lB" dmcf-ptype="general">미국 최고 지도자의 우주개발 의지가 소극적으로 돌아선 가장 큰 이유는 아폴로 계획에 따라 진행된 달 착륙이 냉전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은 국가 위신을 높이기 위해 누가 먼저 달 표면에 사람을 보내느냐를 놓고 소련과 치열하게 경쟁했다.</p> <p contents-hash="26b86cf43db7e546d41af08ceebddfb47100b5ed572eaa9ac0fb37ba69f0f288" dmcf-pid="3FnP0hd8Tq" dmcf-ptype="general">그런데 1969년 아폴로 11호가 소련 우주선을 제치고 달 착륙에 먼저 성공하자 미국 국내 여론과 정부 모두 달에 계속 우주비행사를 보낼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된 것이다. 달 착륙의 동력이 됐던 냉전체제가 소련에 대한 승리를 확인한 순간, 걸림돌로 변한 셈이다.</p> <p contents-hash="f2f41a5c1edb2de0f4d85b43a95e4f2f23933983f9a0868f05ddbe2f1fed5b98" dmcf-pid="03LQplJ6Sz" dmcf-ptype="general">부족한 돈도 문제였다. 1960년대 중반 NASA 예산 규모는 미 연방정부 전체 예산 중 약 4%를 차지했다. 현재는 약 0.4%다. 당시 베트남전을 치르던 미국은 늘어나는 전쟁 비용에 직면한 상황이었다. 복지 수요도 증가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달에서 손을 떼고, 화성에는 눈길을 주지 않기로 한 것이다.</p> <p contents-hash="a663d858ca367b3c29f8ef2d1bfce5f1a1605c2376d9a9943f33e38c9b34944a" dmcf-pid="p0oxUSiPy7" dmcf-ptype="general">하지만 지금 상황은 다르다. 50여년 전처럼 달 개척이 잠시 진행됐다가 수그러들 가능성은 적다. 달 유인 기지 건설은 국가 위신보다는 광물자원 개척, 화성 등으로 가기 위한 우주 터미널 구축이라는 실리적 목적 때문에 추진되고 있어서다. 소요 비용도 낮아졌다. 스페이스X 등 민간 우주기업이 정부가 직접 개발하는 것보다 낮은 가격으로 각종 첨단 장비를 만들 수 있다.</p> <p contents-hash="bd0cdfabc91b83ac338c309a4e8dda26c8822a9aeb4e91736a2a1ab672f4aab3" dmcf-pid="UpgMuvnQvu" dmcf-ptype="general">NASA는 “STG 보고서에 포함됐던 ‘우주정거장 건설’은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현실화했다”며 “ISS에서 사람이 상주하고 있는 경험은 향후 인류를 달과 화성으로 보내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p> <p contents-hash="9753126b61e8597d74eab9b0160debac58034d4ce1eaee1e0792bf93ac0a0cf6" dmcf-pid="uUaR7TLxSU" dmcf-ptype="general">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쓰레기 없는 마라톤 ‘무해런’…친환경 달리기 실천 ‘유쾌’했다 04-05 다음 “로봇 양반, 그 몸으로 어딜 가겠다고”… 폼은 엉성해도 어디든 갑니다 04-05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