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된 열혈 '울보 럭비 선생님'…야마구치 요시하루 별세 작성일 05-30 61 목록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01/2026/05/30/AKR20260530054300704_01_i_P4_20260530185620085.jpg" alt="" /><em class="img_desc">2015년의 고인<br>[교도=연합뉴스]</em></span><br><br>(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수업 중에 복도를 오토바이가 달리던 일본 교토 최고의 문제아 학교. 체육 교사로 부임한 뒤 문제 학생들과 정면으로 부딪치며 이 학교 럭비부를 일본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끈 야마구치 요시하루(山口良治) 전 후시미공고(현 교토공학원고) 럭비부 감독이 29일 오전 8시 13분께 교토 시내 한 병원에서 뇌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일본 매체가 30일 일제히 보도했다. 향년 83세.<br><br> 1943년 2월 15일 후쿠이현에서 태어난 고인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함께 살 때 "선생님의 여러 보살핌을 받은" 경험에서 교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br><br> 고교 시절 럭비를 시작했다. 체육대학 졸업 후 고교 교사로 일하는 한편, 1966년 일본 럭비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포지션은 플랭커(축구 '포워드'와 비슷)였다.<br><br> 1974년 체육 교사로 부임한 후시미공고는 황폐한 상태였다. 수업 중에 복도를 오토바이가 달리고, 교토에서 가장 난폭한 고등학교로 불렸다. 고인은 이런 학생들을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교사들을 향해 "자기 형제나 자녀라도 무시하겠느냐"며 분노했다.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학생들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다.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그에게 '울보 선생님'이라는 애칭이 붙었다. <br><br> 1975년 럭비부 감독에 취임했다. 부원들은 럭비 경험이 전혀 없는 데다 말썽꾸러기들뿐. 감독 취임 초기 자기들끼리 모의해 연습 경기 출전을 거부한 적도 있었다. 그해 5월17일 하나조노고교와의 첫 공식전에선 0-112라는 대패를 당했다. "너희들, 분하지 않느냐"며 학생들을 격려하며 열혈 지도로 단련시킨 끝에 1981년 1월 전국 고교 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모두 4차례 전국 제패와 2회 준우승을 달성했다. 이기든 지든 크게 우는 모습은 그대로였다.<br><br> 애제자 중 한명인 야마모토 신고씨는 중학생 때부터 유명한 문제아였다. 고인은 "럭비는 규칙이 있는 싸움"이라는 말로 그에게 럭비를 권했다.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야마모토가 항상 배고파한다는 걸 눈치채고 시합 전 큰 주먹밥 2개를 챙겨주곤 했다. 나중에는 "문제가 있는 학생의 마음을 네가 가장 잘 안다.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는 건 너밖에 없다"고 격려해 나라현의 고교 교사로 키워냈다. 야마모토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저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말썽꾸러기였습니다"라며 "저는 주먹밥 하나 덕분에 (인생이) 바뀐 사람입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어요. 야마구치 선생님이 제 인생을 바꿔주셨어요"라고 했다.<br><b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01/2026/05/30/AKR20260530054300704_02_i_P4_20260530185620089.jpg" alt="" /><em class="img_desc">2017년 후시미공고 제자들 앞에서 인사말을 하며 울먹이던 고인<br>[교도=연합뉴스]</em></span><br><br>고인의 열정적인 지도와 학생들의 성장기는 1984∼1985년 TBS 계열 방송국이 방영한 학원 드라마 '스쿨☆워즈 ~울보 선생님의 7년 전쟁∼'의 모델이 됐다. '교내 폭력'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던 시절, 불량 청소년들이 럭비를 계기로 변해간다는 이야기가 공감을 불러일으켜 시청률 20%를 넘긴 히트작이 됐다. 드라마 방영 후인 1985년 일본 전역의 고교에서 럭비부 입부 희망자가 급증할 정도였다. <br><br> 닛칸스포츠의 고교 럭비 담당 기자였던 기무라 유조(木村有三)씨는 고인이 25년 전 취재에 응하며 "경기에 나서는 선수는, 나설 수 없는 선수의 아쉬움을 생각하고, 함께 힘써온 동료들을 믿으며, 그리고 여기까지 키워준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싸워주길 바랍니다. 믿음은 힘이 되거든요"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고 회상한 뒤 "다정하게, 뜨겁게, 전력을 다해 살아간다는 것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셨다"고 썼다.<br><br> chungwon@yna.co.kr<br><br> 관련자료 이전 한국 사격을 밝힌다…사격 추가은, 생애 첫 월드컵 시니어 메달 획득 05-30 다음 ‘99만원→254만원’ 가격 폭등에…4년 넘게 안 바꾸고 버텼다, 출하량 ‘역대급’ 추락 05-30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