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탓인가, 코트의 법칙인가... 롤랑가로스를 뒤흔든 ‘언더독의 역습’[박준용 인앤아웃] 작성일 06-02 43 목록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144/2026/06/02/0001118697_001_20260602133617619.jpg" alt="" /><em class="img_desc">프랑스오픈 경기 도중 더위를 식히는 얀니크 신네르. 신네르는 2라운드에서 탈락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em></span><br><br>1년 중 테니스 권력의 지형도가 가장 심하게 요동치는 시기는 클레이코트 시즌이다. 현재 열리고 있는 시즌 두 번째 그랜드슬램 롤랑가로스에서 역시 톱랭커들이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br><br>30연승을 달리며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노린 세계 1위 야닉 시너(이탈리아)가 2회전에서 후안 마누엘 세룬돌로(아르헨티나, 56위)에게 발목을 잡히며 무너졌다. 롤랑가로스 남자단식에서 톱시드가 2회전에서 탈락한 것은 2000년 안드레 애거시(미국) 이후 26년 만이다.<br><br>이 대회에서만 네 차례 우승한 ‘클레이의 여왕’ 이가 시비옹텍(폴란드, 3위)마저 16강에서 마르타 코스튜크(우크라이나, 15위)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며 짐을 쌌다.<br><br>1회전에서만 남녀 단식 통틀어 무려 15명의 시드 선수가 탈락하는 등 올해 롤랑가로스에서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br><br>이변의 원인으로는 체감 온도 32도를 웃도는 프랑스 파리의 이례적인 폭염이 꼽힌다. 실제 시너가 탈수 증세를 호소하는 등 날씨가 변수가 된 것은 사실이다.<br><br>하지만 이변의 본질을 단순히 ‘날씨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같은 태양 아래서 언더독들 역시 똑같은 열기를 견디며 승리를 쟁취했기 때문이다. 결국, 핵심은 테니스공과 흙이 만들어내는 물리적 법칙에 있다.<br><br><b>무력해지는 강서브와 공격</b><br><br>현대 테니스에서 톱랭커들의 가장 강력한 기초 자산은 강력한 ‘서브’와 ‘첫 번째 공격’이다. 하드코트와 잔디코트에서는 시속 200km가 넘는 서브 한 방으로 포인트를 쉽게 선점하며 경기를 지배한다.<br><br>하지만 클레이코트의 붉은 앙투카 표면은 강력한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국제테니스연맹(ITF)의 코트 표면 마찰 분석에 따르면 공이 클레이 바닥에 닿는 순간 발생하는 마찰력은 잔디코트보다 훨씬 강해 바운드 후 공의 속도가 약 40~45%까지 감소한다. 속도가 줄어든 공은 상대의 리턴 타이밍을 쉽게 만들어주며 강력한 톱스핀과 결합해 어깨 높이 이상으로 높게 튀어 오른다.<br><br>결국, 톱랭커들은 평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허리 높이의 타점을 빼앗긴 채 매 포인트마다 ‘서브 에이스’라는 보너스 없이 바닥부터 랠리를 설계해야 하는 고전에 직면한다.<br><b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144/2026/06/02/0001118697_002_20260602133617708.jpg" alt="" /><em class="img_desc">클레이코트에서는 미끄러지면서도 밸런스를 잃지 않는 슬라이딩 스텝이 중요하다. 사진은 즈베레프. 게티이미지코리아</em></span><br><br><b>미끄러지며 치는 스텝의 불일치가 낳는 범실</b><br><br>클레이코트에서의 움직임은 하드코트와 완전히 다르다. 하드코트가 ‘달리다가 멈추는’ 방식이라면 클레이코트는 ‘미끄러지며 치는(슬라이딩)’ 방식이다.<br><br>공을 향해 달려가다가 미끄러지면서 슬라이딩을 시작하고 그 미끄러지는 과정 속에서 샷의 임팩트를 정확히 맞춘 뒤 슬라이딩이 끝남과 동시에 다음 동작으로 복귀해야 한다. 남미나 스페인 등 어릴 때부터 클레이코트에서 훈련한 이른바 ‘클레이 스페셜리스트’들은 이 메커니즘이 몸에 배어 있다.<br><br>반면, 하드코트의 정교한 타이밍에 익숙한 톱랭커들은 순간적으로 발이 미끄러질 때 밸런스가 무너지며 샷의 정확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균형이 깨진 상태에서 양산되는 범실은 언더독에게 훌륭한 자양분이 된다.<br><br><b>무기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진흙탕 체력전’</b><br><br>공이 느려지고 수비 범위가 넓어지다 보니 클레이코트에서는 웬만한 위너에도 상대의 수비에 걸려 되돌아온다.<br><br>스포츠 바이오메카닉스(Sports Biomechanics) 연구에 따르면 클레이코트의 평균 랠리 횟수는 하드코트의 두 배에 달하며 한 경기를 치를 때 선수의 이동 거리와 산소 소모량 역시 압도적으로 높다.<br><br>이번 대회 시너의 패배 과정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상대인 세룬돌로의 끈질긴 수비에 막혀 경기가 5세트 장기전으로 흘러가자 시너는 체력 저하와 멘탈 흔들림을 호소하며 무너졌다.<br><br>롤랑가로스에서의 끝없는 랠리는 톱랭커들의 조급함을 유발하고 조급함은 무리한 공격으로 이어지며 결국 체력과 정신력을 무기로 버티는 하위 랭커들이 이변을 완성하는 무대가 만들어진다.<br><b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144/2026/06/02/0001118697_003_20260602133617789.jpg" alt="" /><em class="img_desc">생애 첫 8강에 오른 주앙 폰세카에 막혀 탈락한 카스페르 루드. 게티이미지코리아</em></span><br><br><b>톱랭커의 조기 탈락은 흥행 실패?</b><br><br>대회 주최측 입장에서는 시너와 시비옹텍 같은 슈퍼스타들의 조기 퇴장은 뼈아프다. 스타 플레이어의 부재는 대회 후반부로 갈수록 중계방송의 시청률 하락과 관중 감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br><br>반대로 생각하면 ‘이변’은 가장 강력한 흥행 요소이기도 하다. 뻔한 우승 후보 대신 19세 주앙 폰세카(브라질, 30위) 같은 영건이나 무명에 가까운 선수들이 앙투카 위에서 기적을 쓰는 과정은 새로운 스타를 탄생시키기도 한다.<br><br>절대 강자가 사라진 대진표는 남은 선수들 모두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동기를 부여해 경기마다 승리를 위한 처절한 명승부를 낳으며 팬들의 몰입도를 극대화하고 있다.<br><br>불규칙 바운드가 난무하고, 바람에 붉은 먼지가 날리며, 아무리 강하게 쳐도 공이 돌아오는 클레이코트는 톱랭커들이 가진 ‘네임 밸류’를 떼고 오직 코트 위의 적응력과 원초적인 생존 체력만으로 맞붙게 만드는 평등한 전쟁터라고 할 수 있다.<br><br>시너의 조기 탈락은 이 잔혹한 붉은 흙이 던진 경고장과 같다. 완벽하게 정제된 테니스가 아닌 진흙탕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자만이 왕관을 쓸 수 있다는 점, 그것이 비록 흥행 전선에 변수를 줄지언정 매년 롤랑가로스가 전 세계 테니스 팬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본질이다.<br><br><박준용 테니스 칼럼니스트(loveis5517@naver.com), ENA 스포츠 테니스 해설위원, 아레테컴퍼니(주) 대표> 관련자료 이전 SOOP, 배구연맹 가입 승인…V리그 여자부 7구단 체제 유지 06-02 다음 [서울데이터랩]6월 2일 암호화폐 시총 상위종목 동향 06-02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