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뛰지 않은 준결승은 선물인가 함정인가…코볼리의 5세트 붕괴가 남긴 질문 작성일 06-08 27 목록 <strong class="media_end_summary">- 아르날디 기권으로 준결승 치르지 않고 결승에 오른 코볼리<br>- 즈베레프와 결승서 4세트까지 버텼지만 5세트 1-6 급격한 붕괴<br>- 5세트 경험은 있었지만, 메이저 결승 5세트의 중압감은 달랐다<br>- "그랜드슬램 결승 압박에 익숙하지 않았다"는 코볼리의 고백<br>- 시너·무세티에 코볼리·아르날디까지, 이탈리아 남자 테니스의 새 두께</strong><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81/2026/06/08/0000013454_001_20260608171113741.png" alt="" /><em class="img_desc">프랑스오픈 시상식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플라비오 코볼리가 챔피언 알렉산더 즈베레프와 나란히 섰다. 롤랑가로스 페이스북</em></span></div><br><br>준결승을 뛰지 않은 것은 선물이었을까요. 아니면 함정이었을까요.<br><br> 플라비오 코볼리(24·이탈리아)는 프랑스오픈 남자 단식 결승에서 알렉산더 즈베레프(29·독일)에게 2-3(1-6, 6-4, 4-6, 7-6, 1-6)으로 졌습니다. 경기 시간은 4시간 16분. 즈베레프는 2020년 US오픈, 2024년 프랑스오픈, 2025년 호주오픈 결승 패배를 딛고 네 번째 메이저 결승에서 마침내 첫 그랜드슬램 우승 트로피를 들었습니다.<br><br> 하지만 이 결승은 패자 코볼리에게도 오래 머물게 합니다. 그는 평범한 결승 진출자가 아니었습니다. 준결승을 이기고 올라온 선수가 아니라, 마테오 아르날디의 바이러스 증세 기권으로 결승 티켓을 얻은 선수였습니다. 필리프 샤트리에 코트의 야간 세션은 열리지 않았고, 1만5000명 규모 센터코트 관중은 환불 대상이 됐습니다. 코볼리의 생애 첫 메이저 결승 티켓은 매치포인트가 아니라 상대의 기권 통보와 함께 손에 들어왔습니다.<br><br> 그래서 결승 전부터 질문은 분명했습니다. 하루 더 쉰 코볼리는 유리했을까. 아니면 준결승이라는 거대한 압박을 몸으로 통과하지 못한 채 결승에 서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됐을까.<br><br> 코볼리 자신도 그 미묘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준결승 기권 소식을 들은 직후 "거의 울 뻔했다"고 말했습니다. 아르날디가 찾아와 기권을 알렸을 때, 코볼리는 기쁨보다 동료의 불운에 먼저 흔들렸습니다. "나는 이 경기를 할 준비가 돼 있었다. 그가 왔을 때 정말 슬펐다"고도 했습니다. 결승행의 환희와 친구의 아픔이 한꺼번에 밀려온 이상한 밤이었습니다.<br><br> 테니스에서 휴식은 분명한 자산입니다. 특히 2주 동안 5세트 경기를 치르는 남자 그랜드슬램에서는 하루의 차이가 몸을 바꿉니다. 하지만 그랜드슬램 후반부의 휴식은 단순한 체력 문제가 아닙니다. 결승으로 가는 몸의 리듬, 경기 감각, 긴장에 적응하는 시간까지 포함됩니다. 준결승은 결승의 예행연습이기도 합니다. 선수는 그 무대를 한 번 통과하면서 심장을 결승 속도로 맞춥니다. 코볼리는 그 과정을 건너뛰었습니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81/2026/06/08/0000013454_002_20260608171113848.png" alt="" /><em class="img_desc">알렉산더 즈베레프가 프랑스오픈 남자 단식 결승에서 코볼리를 꺾고 생애 첫 그랜드슬램 우승을 차지한 뒤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기뻐하고 있다. 롤랑가로스 페이스북</em></span></div><br><br>결승 초반은 그 우려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코볼리는 1세트를 1-6으로 내줬습니다. 몸은 쉬었지만, 결승의 속도에는 늦게 들어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첫 메이저 결승, 상대는 세 번의 메이저 결승 패배를 경험한 세계 정상급 선수. 코볼리에게 필리프 샤트리에 코트는 익숙한 클레이코트가 아니라 다른 중력의 무대처럼 보였습니다.<br><br> 그런데 코볼리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2세트를 6-4로 따내며 결승을 다시 열었습니다. 3세트를 내준 뒤에도 4세트 타이브레이크를 잡아내며 승부를 5세트로 끌고 갔습니다. 그는 단순히 운 좋게 결승에 오른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강한 포핸드, 빠른 발, 대담한 공격 전환으로 즈베레프를 흔들었습니다. 4세트가 끝났을 때, 결승은 다시 원점이었습니다.<br><br> 문제는 5세트였습니다.<br><br> 코볼리가 5세트 자체에 전혀 낯선 선수였던 것은 아닙니다. 결승 전까지 그의 5세트 경기 전적은 3승 2패였습니다. 긴 경기를 모르는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메이저 결승 5세트는 전혀 다른 무대였습니다. 4세트 타이브레이크를 따내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린 순간, 그는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도전자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메이저 우승까지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제로 본 선수가 됐습니다.<br><br> 그 순간부터 라켓은 조금 무거워졌고, 판단은 조금 빨라졌습니다. 코볼리는 마지막 세트에서 1-6으로 무너졌습니다. 스코어만 보면 체력의 한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더 정확히는 우승이 눈앞에 보인 순간의 중압감이었습니다. 코볼리도 경기 뒤 "이런 종류의 압박에 아직 익숙하지 않다"고 인정했습니다. 중요한 순간에 조금 서둘렀고, 그 결정에서 배워야 한다는 취지의 말도 남겼습니다.<br><br> 체력은 쉬었지만, 우승을 상상한 순간을 견디는 근육은 아직 충분히 단단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5세트 경기 경험은 있었지만, 메이저 결승 5세트에서 트로피가 보이는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준결승을 뛰지 않은 휴식은 몸을 살렸지만, 결승까지 올라오는 과정에서 한 차례 더 큰 압박을 통과할 기회는 빼앗았습니다. 코볼리의 마지막 세트 붕괴는 체력 저하라기보다, 우승에 대한 중압감이 만든 자멸에 가까운 순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br><br> 즈베레프에게 5세트는 다른 의미였습니다. 그는 이미 결승에서 무너져 본 선수입니다. 2020년 US오픈 결승에서는 도미니크 팀에게 두 세트를 먼저 따고도 역전패했습니다. 2024년 프랑스오픈 결승에서는 카를로스 알카라스에게 5세트 끝에 졌습니다. 결승 5세트는 즈베레프에게 가장 아픈 기억의 장소였습니다.<br><br>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4세트 타이브레이크를 내줬을 때 과거의 악몽이 다시 고개를 들 수 있었지만, 즈베레프는 5세트에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경기 뒤 4세트 크램프가 오히려 마음의 짐을 덜어줬다고 했습니다. 몸에 문제가 생기자 역설적으로 머리가 복잡한 압박에서 풀렸고, 그 덕분에 5세트를 치를 수 있었다는 설명이었습니다.<br><br> 그래서 5세트 6-1은 단순한 체력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결승의 기억을 다루는 방식의 차이였습니다. 즈베레프는 세 번의 결승 패배로 그 압박을 알고 있었습니다. 코볼리는 처음 만났습니다. 한 선수는 상처를 통과해 결승의 언어를 배웠고, 다른 선수는 그 언어를 이제 막 배우기 시작했습니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81/2026/06/08/0000013454_003_20260608171113933.png" alt="" /><em class="img_desc">3전4기 끝에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정상에 오른 즈베레프는 마지막 5세트에서 코볼리는 압도했다. 롤랑가로스 홈페이지</em></span></div><br><br>그래도 코볼리의 결승은 패배로만 남지 않습니다. 그는 경기 뒤 "후회는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랜드슬램 결승을 치렀고, 누구도 그것을 빼앗을 수 없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또 "이 경기는 웃으며 받아들여야 한다. 모두가 모든 것을 쏟았다"고 했습니다. 코볼리는 슬펐지만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졌지만 자신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br><br> 그의 시선은 이미 다음 목표로 향했습니다. 코볼리는 시즌 최종전인 ATP 파이널스 출전을 목표로 언급했습니다. 장소는 투린입니다. 이탈리아 선수에게 투린은 단순한 개최지가 아닙니다. 홈 팬 앞에서 한 시즌 최고의 8명 안에 들어섰음을 증명하는 무대입니다. 프랑스오픈 준우승으로 그의 목표는 더 이상 허황된 꿈처럼 들리지 않게 됐습니다.<br><br> 이 대목에서 이탈리아 남자 테니스의 현재가 보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이탈리아 테니스의 얼굴은 야닉 시너였습니다. 여기에 로렌초 무세티가 감각적인 테니스로 존재감을 보였고, 이번 대회에서는 코볼리와 아르날디가 동시에 4강 무대에 섰습니다. 비록 아르날디의 기권으로 이탈리아 선수끼리의 준결승은 열리지 않았지만, 그 자체가 의미였습니다. 이탈리아 남자 테니스가 더 이상 시너 한 명에게만 기대는 시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br><br> 코볼리는 아르날디를 향해 "우리 모두에게 큰 영감"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이탈리아 남자 테니스 내부에는 서로를 밀어 올리는 경쟁과 존중이 함께 있습니다. 시너가 기준을 만들고, 무세티가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고, 아르날디와 코볼리가 그 뒤를 따라오는 구조입니다. 한 명의 천재가 아니라 여러 명의 투어급 선수가 동시에 성장하는 생태계입니다.<br><br> 역사적 상징도 있습니다. 1976년 아드리아노 파나타 이후 이탈리아 남자 선수는 프랑스오픈 단식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결승에서 코볼리는 그 오래된 공백을 깰 기회를 잡았습니다. 트로피는 즈베레프에게 갔지만, 코볼리는 파나타 이후 세대가 다시 파리의 마지막 일요일에 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br><br> 물론 코볼리의 패배를 기권승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즈베레프의 우승을 깎아내리는 일이고, 코볼리의 분투도 가볍게 만드는 일입니다. 코볼리는 4세트까지 충분히 결승다운 경기를 했습니다. 첫 메이저 결승에서 5세트까지 간 것만으로도 그의 대회는 실패가 아니었습니다.<br><br> 다만 5세트의 붕괴는 질문을 남깁니다. 그랜드슬램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얼마나 쉬었느냐가 아니라, 어떤 긴장을 통과했느냐일 수 있습니다. 코볼리는 결승 전까지 5세트 경기에서 3승 2패를 기록한 선수였습니다. 긴 경기를 모르는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메이저 결승 5세트에서 우승이 손에 닿을 듯 보이는 압박은 또 다른 종류의 경기였습니다. 몸은 신선했지만, 마음은 처음 보는 무게를 만났습니다.<br><br> 그래서 이 결승은 즈베레프의 해방이자 코볼리의 학습이었습니다. 즈베레프는 네 번째 결승에서 처음 웃었습니다. 코볼리는 첫 결승에서 마지막 세트의 무게를 배웠습니다.<br><br> 뛰지 않은 준결승은 선물이었습니다. 동시에 함정이었습니다. 몸은 쉬게 했지만, 마음을 결승에 맞춰 달구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함정에 빠졌다고 해서 코볼리의 길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이 패배를 통해 다음 결승을 준비할 언어를 얻었습니다.<br><br> 코볼리가 다음 메이저 결승에 다시 선다면, 그는 이번 5세트를 가장 오래 기억할지 모릅니다. 그랜드슬램 결승은 하루 더 쉰 선수가 아니라, 마지막 한 세트를 견딘 선수가 가져간다는 사실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탈리아 남자 테니스는 그 패배 속에서도 또 한 명의 결승 후보를 얻었습니다.<br><br>김종석 채널A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br><br>[기사제보 tennis@tennis.co.kr]<br><br> 관련자료 이전 [핸드볼 H리그 결산] 조직력 약화로 흔들린 광주도시공사...‘사령탑 교체’라는 아픔 겪어 06-08 다음 "얼굴 진짜 작네! 거기에 미소도 귀여워"..."숏컷 미녀" 日 배드민턴 요정, 근황 공개 →팬들 반응 폭발 06-08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