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라켓 내려놓으면 책을 펴라"…주원홍 회장이 양구에 만드는 작은 책방 작성일 07-30 8 목록 <strong class="media_end_summary">주니어 대회만 연간 120일…성인대회 포함하면 양구에서 195일간 테니스대회<br>휴식 시간 휴대전화 대신 책 읽는 새로운 선수 문화 조성<br>다독상·우수 독후감상문 선정해 '테니스인의 밤'에서 시상 예정</strong><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81/2026/07/30/0000013843_001_20260730090312358.png" alt="" /><em class="img_desc">양구 스포츠타운 실내테니스장 2층 선수 휴게실이 책방으로 바뀐 모습을 표현한 예상 이미지. 대한테니스협회는 중·고교 선수들의 독서를 권장하기 위해 이곳에 책장과 도서를 비치할 계획이다. AI 생성 이미지.</em></span></div><br><br>강원 양구 스포츠타운 실내테니스장 2층 선수 휴게실이 작은 책방으로 변모합니다. 대회를 마친 청소년 선수들이 휴대전화를 보거나 식사하며 시간을 보내던 다소 휑한 공간에 책장이 들어서고, 성장기에 읽을 만한 필독서와 교양서가 채워질 예정입니다.<br><br>이번 구상은 주원홍 대한테니스협회장의 지시에서 시작됐습니다. 주 회장은 "대회장에서 쉬는 동안 휴대전화만 보는 선수들에게 독서를 권유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라고 밝혔습니다. 책 몇 권을 비치하는 일회성 사업이 아니라 테니스 선수들이 경기와 훈련 사이에 자연스럽게 책을 펼치는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뜻입니다.<br><br>협회는 선수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후속 프로그램도 마련할 계획입니다. 책을 많이 읽은 선수에게 다독상을 주고, 우수 독후감상문 등을 선정해 연말 '테니스인의 밤'에서 시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독서를 개인의 자율에만 맡기지 않고 선수들이 책을 읽고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동기까지 제공하겠다는 것입니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81/2026/07/30/0000013843_002_20260730090312461.jpg" alt="" /><em class="img_desc">한국 테니스의 메카로 불리는 양구 스포츠타운의 실내테니스장.</em></span></div><br><br>첫 책방으로 양구가 선택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양구는 국내 주니어 테니스 선수들이 가장 자주 찾는 대회장 가운데 한 곳입니다.<br><br>대한테니스협회가 2026년 대회 일정을 집계한 결과 양구에서 열리는 주니어 대회는 대회 명칭과 나이 부문을 구분하면 17개, 같은 명칭의 나이별 대회를 하나로 묶으면 14개입니다. 주니어 대회 기간만 모두 합쳐도 연간 120일에 이릅니다. 청소년 선수들이 1년의 약 3분의 1 동안 양구 코트를 찾는 셈입니다.<br><br>성인대회까지 포함하여 대회 명칭과 부문을 구분하면 25개, 같은 명칭의 대회를 묶으면 21개입니다. 전체 대회 기간은 195일에 이릅니다. 1년의 절반이 넘는 기간 동안 양구에서 테니스대회가 이어지는 것입니다.<br><br>선수들은 경기와 경기 사이, 비로 일정이 미뤄졌을 때, 훈련이나 이동을 기다릴 때 휴게실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냅니다. 주니어 대회만 연간 120일 열리는 공간에 책장이 들어서면 전국에서 모인 수많은 청소년 선수가 책을 접할 수 있습니다. 양구의 작은 책방이 상징에 머물지 않고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이유입니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81/2026/07/30/0000013843_003_20260730090312535.png" alt="" /><em class="img_desc">주원홍 회장은 삼성 테니스단 감독 시절부터 선수들에게 독서를 강조해 왔다. 테니스코리아 제공</em></span></div><br><br>주 회장은 삼성물산과 삼성증권 테니스단 감독 시절부터 지금까지 "운동선수도 반드시 공부와 독서를 병행해야 한다"라는 철학을 강조해 왔습니다. 좋은 선수 이전에 생각할 줄 아는 사람, 은퇴 후에도 자신의 삶을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 그의 오랜 지론입니다.<br><br>주 회장 자신도 선수 시절 문학전집 등 책을 가까이했습니다. 대학 전공도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유로 성균관대 법학과를 선택했습니다. 1983년 은퇴 후 미국 유학길에 올랐을 때는 대회장에서도 숙제하는 외국 주니어 선수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br><br>운동과 공부를 자연스럽게 병행하는 외국 선수들의 모습은 이후 그의 지도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주 회장은 지적 능력을 키우지 않고 운동만 하는 선수는 기술과 기량 면에서도 결국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책을 읽어야 새로운 사고를 할 수 있고, 그래야 경기 중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창의적인 플레이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br><br>독서를 단순히 지식을 쌓는 수단으로만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다양한 사람의 삶과 생각을 접하면서 상대를 이해하고, 승리와 패배를 받아들이며, 자기 행동에 책임지는 인성을 기를 수 있다고 봤습니다. 주 회장이 말하는 '공부하는 선수'는 시험 점수가 높은 선수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선수에 가깝습니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81/2026/07/30/0000013843_004_20260730090312614.jpg" alt="" /><em class="img_desc">양구 테니스장 휴게실</em></span></div><br><br>그 철학은 실제 선수 지도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삼성증권 감독 시절 이형택에게 직접 《삼국지》를 사주며 읽기를 권했습니다. 정현에게도 영어 공부와 독서를 꾸준히 강조했습니다. 세계 무대에서 선수와 코치, 대회 관계자들과 소통하려면 라켓을 쥔 손만큼이나 생각하는 머리와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입니다.<br><br>첫 제자인 박성희의 사례는 주 회장이 추구한 선수 교육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주 회장은 중학교 1학년이던 박성희를 발굴해 세계 랭킹 57위까지 키웠습니다. 박성희가 은퇴 후 다시 공부를 시작해 영국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을 때는 운동선수도 학업과 새로운 인생에 도전할 수 있다는 최고의 본보기라며 누구보다 기뻐했습니다.<br><br>주 회장은 선수 생활 이후의 삶도 늘 강조했습니다. 운동은 언젠가 끝나지만 선수의 인생은 은퇴 후에도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나 행정가로 테니스계에 남든, 전혀 다른 분야에 도전하든 어학과 독서가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는 밑바탕이 된다는 것입니다.<br><br>2003년에는 학생 선수의 학습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정부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는 "운동도 못 하는데 공부까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학생 선수들이 운동과 학업 어느 쪽에서도 소외되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을 요구했습니다.<br><br>다만 선수들을 형식적으로 교실에만 앉혀두는 방식에는 비판적이었습니다. 훈련과 대회로 지친 학생 선수가 수업 시간에 잠만 자도록 방치한다면 공부와 운동을 모두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보여주기식 출석보다 선수들에게 실질적인 어학 교육과 독서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대안이었습니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81/2026/07/30/0000013843_005_20260730090312719.png" alt="" /><em class="img_desc">양구에서 열린 테니스대회에 참가한 선수를 격려하는 주원홍 회장. 황서진 프리랜서 제공</em></span></div><br><br>양구 선수 휴게실 책방은 이런 철학을 눈에 보이는 공간으로 옮기는 작업입니다. 김종문 대한테니스협회 사무처장은 "주 회장의 지시에 따라 사무처에서 준비하고 있다"라며 "양구 대회를 담당하는 직원들과 책장 설치와 도서 확보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br><br>실내테니스장이 협회 소유 시설은 아닌 만큼 양구군스포츠재단 등 관계 기관의 허가와 협조가 필요합니다. 협회는 재단 측과 공간 사용 및 책장 설치 가능성을 협의할 예정입니다. 협회 임직원과 테니스 동호인 등을 통해 책을 기증받는 방안도 살펴보고 있습니다.<br><br>주 회장은 큰 비용을 들이지 않도록 중고 거래 플랫폼을 통해 책장을 구해보라는 의견도 냈습니다. 거창한 시설을 새로 만들기보다 사용할 수 있는 책장을 마련하고 좋은 책을 모아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펼쳐보도록 하자는 실용적인 접근입니다.<br><br>종이책 비치에 그치지 않고 전자책 활용도 검토되고 있습니다. 해외 대회 출전이 잦고 휴대전화와 태블릿PC 사용에 익숙한 선수들을 위해 온라인 전자도서관 서비스를 연계하자는 아이디어입니다. 휴대전화를 독서를 방해하는 기기로만 보지 않고 전자책을 읽는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것입니다.<br><br>전자책 구상은 해외 주니어 테니스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국제테니스연맹(ITF)은 2023년 드와이트 글로벌 온라인 스쿨을 월드 테니스투어 주니어 공식 교육 파트너로 선정했습니다. 세계 각지를 이동하는 선수들이 온라인으로 학업을 이어가고 진학 상담과 교육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ITF는 주니어 선수들에게 대회 참가와 선수 보호 등에 관한 온라인 교육과정 이수도 요구하고 있습니다.<br><br>ITF가 투어 선수 전체에 전자도서관 이용권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동이 잦은 선수에게 디지털 학습 환경을 연결한다는 방향은 이미 국제 주니어 무대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양구 휴게실의 종이책을 온라인 전자도서관과 연계하려는 협회의 구상도 이런 흐름을 국내 현실에 맞게 확장하려는 시도입니다.<br><br>김 사무처장은 "해외에 나가는 선수들이 많고 요즘 선수들은 모바일 기기를 익숙하게 사용한다"라라며 "종이책과 함께 전자책을 이용하는 방법도 찾아보려고 한다"라고 설명했습니다.<br><br>현장 지도자들도 책방 조성 취지에 공감했습니다. 박정훈 대한테니스협회 부장은 "어릴 때부터 다양한 책을 읽어야 훌륭한 선수가 되기 이전에 교양을 갖춘 사람이 된다는 주 회장의 말씀에 공감한다"라고 말했습니다.<br><br>윤용일 대한테니스협회 미래국가대표 전임 감독은 휴대전화에 익숙해진 요즘 선수들에게 독서가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윤 감독은 "훌륭한 실력과 훌륭한 인성을 함께 갖춘 선수로 성장하려면 책의 소중함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라며 "지금 선수들을 만나면 가장 먼저 주고 싶은 선물도 책이다. 주 회장의 아이디어가 정말 좋다"라고 밝혔습니다.<br><br>윤 감독은 공교롭게도 협회의 책방 추진 소식을 접하기 전날 막내딸의 손을 잡고 서점을 다녀왔다고 합니다. 자기 자녀에게 책을 가까이하도록 하듯 테니스 유망주들에게도 독서 습관을 심어주고 싶다는 뜻입니다.<br><br>책 한 권이 당장 서브 속도를 높여주거나 포핸드의 정확도를 끌어올려 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한 문장을 오래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며, 패배와 슬럼프를 견디는 힘을 길러줄 수 있습니다. 읽은 책에 관한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과정은 자신의 감정과 판단을 표현하는 능력도 키워줍니다.<br><br>주니어 대회만 연간 120일, 성인대회까지 포함하면 195일 동안 선수들이 찾는 양구의 휴게실에 책장이 들어서는 일은 그래서 작지 않습니다. 라켓을 내려놓은 순간 휴대전화 대신 책을 펼치는 선수들, 읽은 책을 놓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선수들, '테니스인의 밤' 무대에서 다독상과 독후감상문상을 받는 선수들. 주원홍 회장이 양구에서 만들려는 것은 책방 하나가 아니라 한국 테니스의 새로운 문화입니다.  <br><br>김종석 채널A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br><br>[기사제보 tennis@tennis.co.kr]<br><br> 관련자료 이전 스롱피바이 꺾었던 조예은, 전지연도 잡고 LPBA 첫 16강 진출 07-30 다음 직접 겪은 정책 경험담을 영상으로…문체부, 희망사다리 공모전 07-30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