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커리-덕 노비츠키 키워낸 'NBA 명장' 돈 넬슨 별세 작성일 08-11 12 목록 <strong class="media_end_summary">커리·노비츠키 키운 '넬리볼'의 창시자, 현대농구 패러다임을 바꾼 혁신가</strong>미국농구의 전설적인 명장 돈 넬슨(Don Nelson)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br><br>ESPN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은 지난 10일(이하 한국시간) 넬슨 감독이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별세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향년 86세.<br><br>넬슨 감독은 선수와 지도자로서 모두 NBA(미국 프로농구)에서 모두 거대하면서도 독특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1962년 프로에 데뷔해 시카고 제퍼스(현 워싱턴 위저즈)-LA 레이커스-보스턴 셀틱스 등에서 포워드로 활약했다. 특히 선수생활의 대부분을 보냈던 보스턴에서만 11시즌을 뛰며 무려 5차례 우승을 차지했다.<br><br>현역 시절의 넬슨은 올스타도 주전급 선수도 아니었지만 성실한 플레이로 팀의 빈 자리를 채워주며 감독과 팬들의 사랑을 받는 선수였다. 넬슨은 보스턴에서 이러한 공헌도를 인정받아 식스맨임에도 이례적으로 등번호(19번)가 영구결번되는 영예를 누렸다.<br><br>지도자로서의 커리어는 더욱 파란만장하다. 은퇴 후 1976년부터 밀워키 벅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뉴욕 닉스, 댈러스 매버릭스 등 여러 구단의 감독과 단장을 역임했다. 2010년을 끝으로 지도자에서 은퇴할 때까지 감독 통산 1,355승을 달성하며 그렉 포포비치(전 샌안토니오, 1,390승)에 이어 NBA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승수를 달성한 '명장'으로 평가받는다.<br><br>넬슨은 1983년과 1985년, 1992년에는 무려 세 차례나 'NBA 올해의 감독'에 선정되기도 했다. 1994년에는 미국농구 대표팀(드림팀 2기)의 감독을 맡아 그해 세계선수권(현 FIBA 농구월드컵)에서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2012년에는 감독으로 '네이스미스 미국 농구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br><br>다만 넬슨 감독은 지도자로서는 뛰어난 누적 성적과 별개로, 정작 프로무대에서 우승 경력은 전무한 '감독판 무관의 제왕'으로도 유명하다. 총 31시즌의 지도자 생활 동안 18번이나 팀을 플레이오프에 올려놓았으나 최고성적은 컨퍼런스 파이널(3회)이 한계였고 챔피언결정전(NBA 파이널) 무대조차 한번도 밟아보지 못했다. 가는 팀마다 리빌딩과 유망주 육성에 성공하며 팀을 일정 수준으로 이상으로 반등시키는 능력은 탁월했지만, '우승과는 거리가 먼 감독'이라는 꼬리표는 지도자 커리어를 마치는 순간까지도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br><br>하지만 넬슨 감독의 진정한 업적은 '스몰볼과 공격농구'로 대표되는 현대농구의 트렌드를 개척한 선구자라는데 있었다. 넬슨 감독이 지도자로 한창 활약하던 시기는 전통적인 빅맨 중심 농구와 느린 템포의 하프코트 바스켓이 정석으로 통하던 시대였다. 넬슨 감독은 이러한 고정관념에서 과감히 벗어나 런앤건(속공)과 3점슛, 스몰 라인업을 메인 전술로 적극 활용하는 극단적인 공격 농구 철학(넬리볼, Nellie Ball)을 추구했다.<br><br>비록 당대에는 우승이라는 결실로 이어지지 못했지만, 시대를 앞서간 넬슨 감독의 선견지명은 오늘날 현대농구가 3점슛과 스페이싱을 기반으로 한 업템포 농구의 전성시대를 맞이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또한 그가 이끌었던 댈러스와 골든스테이트는, 모두 넬슨이 구축해놓은 리빌딩과 시스템을 기반으로 훗날 우승까지 차지하며 전성기를 열었다.<br><br>선수발굴과 육성 역시 넬슨의 업적으로 빼놓을 수 없다. 골든스테이트 1기 시절에는 '런 TMC(팀 하더웨이 , 미치 리치몬드 , 크리스 멀린)'라는 당시 NBA에서는 보기드문 철저한 외곽 공격 중심의 삼각편대를 구축했다. 댈러스 시절에는 훗날 NBA의 '글로벌 열풍'을 불러 일으키며 MVP급 선수로 성장한 덕 노비츠키(독일)와 스티브 내쉬(캐나다)를 주전급 선수로 키워냈다. 그리고 골든스테이트 2기 시절에는 2009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오늘날 NBA 역사상 최고의 3점슈터로 성장하게 될 스테픈 커리를 지명하여 2010년대 '골든스테이트 왕조'의 초석을 닦은 것이 바로 넬슨의 마지막 유산이었다.<br><br>넬슨은 흔히 대중적으로 공격농구를 추구하는 감독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의 농구철학은 '자율농구' 유형에 더 가까웠다. 빅맨임에도 중거리 롱2 위주의 공격패턴을 펼치던 노비츠키, 포인트가드이지만 볼배급보다 본인의 득점과 3점 위주의 경기운영을 선호하던 커리는 유망주 시절만해도 NBA에서의 성공 가능성이 불투명하고 장단점이 뚜렷한 선수들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이들의 첫 감독이 된 넬슨은 선수의 플레이스타일에 간섭하거나 억지로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br><br>훗날 레전드가 되는 스타들에게도 아직 유망주이던 시절에 보수적인 다른 감독들이 아닌, 선수의 개성과 장점을 존중하고 그에 걸맞는 전술을 추구하는 넬슨 감독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그리고 커리와 노비츠키는 모두 NBA의 트렌드를 바꾸는 전설적인 슈퍼스타들로 성장하면서 넬슨 감독의 안목이 옳았음을 증명했다.<br><br>넬슨 감독의 별세 소식이 알려진 후 NBA 각계에서는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노비츠키는 자신의 SNS에 "당신이 저의 첫 감독이 아니었다면, 내 커리어가 지금처럼 성공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없다"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커리 역시 "넬슨 감독은 내가 프로에 진출한 첫날부터 내게 도전 의식을 심어줬다. 코트 위에서는 내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주셨다"라고 회고하며 감사를 전했다.<br><br>또한 골든스테이트의 스티브 커 감독은 "돈 넬슨은 농구에 큰 영향을 미친 혁명가다.오늘날 우리가 NBA에서 볼 수 있는 많은 플레이가 바로 넬슨이 추구했던 방식에서 시작됐다"며 넬슨의 영향력을 높이 평가했다. 넬슨은 비록 지도자로서 우승반지는 인연이 없었지만, 시대를 앞서서 NBA 농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위대한 혁신가'로 영원히 남게 됐다.<br> 관련자료 이전 국가대표 꿈꾸는 대학생부터 교사들까지…대중 스포츠로 자리잡아가는 브리지 08-11 다음 모빌린트, 전국 고속도로 AI CCTV 구축 참여… 국산 AI 반도체 적용 08-11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