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의 나라서 탄생한 테니스 영웅 이알라…마닐라의 새벽을 깨웠다 작성일 08-13 37 목록 <b><b>네 살 때 잡은 라켓으로 세계 20위까지<br>필리핀 테니스 역사 새로 쓴 알렉산드라 이알라</b><br></b><br>새벽 세 시. 필리핀 마닐라의 불 꺼진 거실마다 텔레비전만 파랗게 깨어 있었다.<br>  <br> 지구 반대편 코트에서 공이 오갈 때마다, 잠 대신 중계를 택한 사람들은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br>  <br>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22/2026/08/13/20260812520761_20260813045707206.jpg" alt="" /></span></td></tr></tbody></table> 테니스라고는 잘 몰랐던 나라였다. 농구 골대는 동네마다 있었지만 테니스 코트는 부유한 클럽 담장 안에나 있었고 세계 랭킹에서 필리핀 선수 이름을 찾는 일은 오랫동안 헛수고였다.<br>  <br> 그런 나라가 테니스 대회를 보겠다고 밤을 새우고 있었다.<br>  <br>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22/2026/08/13/20260812503876_20260813045707209.jpg" alt="" /></span> </td></tr><tr><td> 필리핀의 국민 영웅으로 떠오른 테니스 선수 알렉산드라 이알라. 이알라 SNS </td></tr></tbody></table> 지난해 봄이었다. 중계 화면 속 선수의 나이는 열아홉. 세계 140위로 마이애미 오픈에 나선 그는 8강에서 만난 세계 2위 이가 시비옹테크를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필리핀 선수가 세계 4강에 오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br>  <br> 알렉산드라 이알라. 필리핀이 반세기 넘게 기다린 이름이다.<br>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22/2026/08/13/20260812503882_20260813045707212.jpg" alt="" /></span> </td></tr><tr><td>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 로베르토 마니에고와 함께한 모습. 이알라 SNS </td></tr></tbody></table> <blockquote style="padding: 2px 8px 2px 20px; border-style: solid; border-color: rgb(204, 204, 204); border-width: 0px 0px 0px 5px;"> <strong>네 살 손녀와 단 하나의 하드코트</strong><br> </blockquote>  <br> 이알라에게 처음 라켓을 쥐여준 건 테니스광인 외할아버지 로베르토 마니에고였다. 네 살짜리 손녀를 데리고 그가 향한 곳은 발레베르데 클럽의 단 하나뿐인 하드코트였다. 필리핀엔 흔한 값싼 셸코트를 두고 굳이 하드코트를 고집한 건, 손녀가 언젠가 세계 무대에서 뛰게 될 날을 생각했기 때문이다.<br>  <br> 그날부터 이알라는 세 살 터울 오빠 미코와 함께 매일 방과 후 그 코트에서 공을 쳤다.<br>  <br> 그리고 2018년, 열두 살의 이알라는 레 프티 아스에서 우승했다. 나달과 알카라스가 어린 시절 거쳐 간 세계 유소년 테니스의 등용문이다. 그 대회를 지켜보던 라파엘 나달 아카데미가 손을 내밀었다.<br>  <br> <blockquote style="padding: 2px 8px 2px 20px; border-style: solid; border-color: rgb(204, 204, 204); border-width: 0px 0px 0px 5px;"> <strong>마닐라를 떠나 나달의 학교로</strong><br> </blockquote>  <br> 이듬해, 열세 살의 이알라는 홀로 비행기에 올랐다. 마닐라를 떠나 스페인으로. 낯선 나라, 낯선 언어, 세계 최고의 또래들과 매일 부딪히는 훈련.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엔 버거웠지만, 그는 필리핀 선수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을 열기 시작했다.<br>  <br> 첫 결실을 맺은 건 2022년이었다. 이알라는 US오픈 주니어 여자단식 정상에 올랐다. 필리핀 테니스 역사상 첫 주니어 그랜드슬램 단식 우승이었다.<br>  <br> 하지만 주니어 챔피언이라는 이름표는 프로 코트에선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았다.<br>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22/2026/08/13/20260812503883_20260813045707215.jpg" alt="" /></span> </td></tr><tr><td> 올해 윔블던에서 디펜딩 챔피언 이가 시비옹테크를 꺾은 뒤 감격하는 이알라. 이알라 SNS </td></tr></tbody></table> <blockquote style="padding: 2px 8px 2px 20px; border-style: solid; border-color: rgb(204, 204, 204); border-width: 0px 0px 0px 5px;"> <strong>“필리핀에서 자란 저에게...”</strong><br> </blockquote>  <br> 프로의 벽은 높았다. 주니어 US오픈 정상에 섰지만, 성인 무대에서 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br>  <br> 이름을 세계에 알린 무대가 지난해 마이애미 오픈이었다. 4대 메이저 바로 아래 등급인 WTA 1000 대회. 세계 140위 이알라는 와일드카드를 받아 출전했다.<br>  <br> 그리고 거침없었다. 그랜드슬램 챔피언 옐레나 오스타펜코와 매디슨 키스를 차례로 꺾더니, 8강에서는 세계 2위 시비옹테크마저 넘어섰다. 더 이상 ‘필리핀의 유망주’라고만 부를 수 없는 순간이었다.<br>  <br> 올여름, 두 사람은 더 큰 무대에서 다시 만났다. 이번엔 윔블던 센터코트였다. <br>  <br> 한 시간 반 가까이 이어진 첫 세트에서 시비옹테크가 먼저 세트포인트를 잡았지만, 이알라는 이를 막아내고 타이브레이크 끝에 세트를 가져왔다. 기세를 탄 이알라는 두 번째 세트까지 잡아냈다. 필리핀 선수 최초의 윔블던 16강이었다.<br>  <br> 승리 직후 이알라는 벅찬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br>  <br> “세레나나 비너스 윌리엄스, 그리고 시비옹테크 같은 선수들에게 이 성과는 작아 보일 수 있겠지만, 필리핀에서 자란 저에게는….”<br>  <br> 말끝이 흐려졌다. 이야기는 방과 후면 오빠와 할아버지를 따라 코트로 향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br>  <br> “그 아이에게 이 승리는 전부예요.”<br>  <br> 이알라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br>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22/2026/08/13/20260812503875_20260813045707218.jpg" alt="" /></span> </td></tr><tr><td> 지난해 태국 방콕에서 열린 동남아시안게임 여자 단식 금메달을 목에 건 이알라. 이알라 SNS </td></tr></tbody></table> <blockquote style="padding: 2px 8px 2px 20px; border-style: solid; border-color: rgb(204, 204, 204); border-width: 0px 0px 0px 5px;"> <strong>복싱의 나라에 등장한 테니스 영웅</strong><br> </blockquote>  <br> 필리핀에는 이미 세계를 제패한 스포츠 영웅들이 있었다. 복싱의 매니 파퀴아오를 비롯해 당구와 역도, 체조에서도 정상급 선수들이 나왔다. 하지만 그 계보에 테니스 선수는 없었다.<br>  <br> 그 빈자리를 이알라가 채웠다. 그가 세계 강호들을 꺾을 때마다 아이들은 라켓을 들었고, 그의 이름이 적힌 옷을 입었다. 나이키는 필리핀 국화 삼파기타를 새긴 이알라 전용 컬렉션까지 내놨다.<br>  <br> 이알라가 바꾼 건 우승과 순위만이 아니었다. 필리핀 아이들에게 세계 무대는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니었다.<br>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22/2026/08/13/20260812503879_20260813045707221.jpg" alt="" /></span> </td></tr><tr><td> 최근 비너스 윌리엄스와 복식조를 이뤄 경기에 나선 이알라(오른쪽). 이알라 SNS </td></tr></tbody></table> <blockquote style="padding: 2px 8px 2px 20px; border-style: solid; border-color: rgb(204, 204, 204); border-width: 0px 0px 0px 5px;"> <strong>반세기를 기다린 이름</strong><br> </blockquote> 이알라의 질주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3일 워싱턴에서 생애 첫 WTA 투어 정상에 섰고 세계 랭킹은 20위까지 올라갔다.<br>  <br> 곧 다시 새벽이 올 것이다. 마닐라의 불 꺼진 거실마다 텔레비전이 파랗게 켜지고 사람들은 잠 대신 이알라의 경기를 택할 것이다.<br>  <br> 반세기를 기다린 필리핀 테니스의 새벽은 이제 막 밝아오고 있다.<br><br> 관련자료 이전 [STN 특집기획_스포츠가 나라의 미래다] '이제는 증명할 시간'…작은 거인 김현우 08-13 다음 [제49기 SG배 한국일보 명인전]말없이 마주하기 08-13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