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세 이건희의 결단…30억 종잣돈으로 K반도체 시대 열었다 작성일 10-19 53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시대 앞서간 반도체 투자<br>삼성 그룹내 반대 뚫고 '베팅'<br>후계자 되기 3년전 사재 이용<br>한국반도체 지분 50% 인수<br>공장·일본 넘나들며 기술확보<br>18년만에 D램 첫 개발 성과<br>세계 반도체 1위 기업 만들어</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KEW6BWRfv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4787c3f910578265debb2c89cb0440b6e9e91c5c95a9f306d9fab26a01cb75cf" dmcf-pid="9DYPbYe4SE"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10/19/mk/20261019174816468kodr.jpg" data-org-width="1000" dmcf-mid="bcl2Ul6bTw"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19/mk/20261019174816468kodr.jpg" width="658"></p> </figure> <p contents-hash="00fa265026103a8e4bf5b4548cf2136066729efd690499806560543f929d0436" dmcf-pid="2wGQKGd8hk" dmcf-ptype="general">"반도체는 우리 민족의 특성에 딱 맞는 사업이라서 미국과 일본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계기를 설명할 때 여러 차례 반복했던 말이다.</p> <p contents-hash="d8aa340234eef7e3f4b093fd45becc6d9edb04f500c96768c4b27a31630ec215" dmcf-pid="VrHx9HJ6vc" dmcf-ptype="general">반도체 업계에선 오늘날 한국 반도체 산업의 탄생과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1974년 이건희 선대회장의 한국반도체 지분 50% 인수를 꼽는다. 당시 전자 산업에는 진출했지만 반도체 사업에는 회의적이었던 삼성그룹이 이건희 선대회장의 지분 인수를 계기로 반도체 사업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후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본격적인 반도체 투자로 이어졌다.</p> <p contents-hash="c7650285544e76ad4ef7439b568cd00f2e5f6e51ab32fb10e9cd6db6b56d9512" dmcf-pid="fmXM2XiPSA" dmcf-ptype="general">19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한국반도체는 미국 모토롤라 출신 강기동 박사가 1974년 경기도 부천에 설립한 국내 최초의 반도체 제조업체 중 하나였다. 하지만 경영난에 빠지면서 인수자를 찾게 됐고, 당시 동양방송(TBC) 이사였던 이건희 선대회장이 사재 50만달러를 들여 이 회사 지분 50%를 인수했다. 당시 환율로 약 2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지하철 기본요금이 30원이던 시절로, 현재 물가로 환산하면 약 3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당시 이건희 선대회장의 나이는 만 32세였다. 그가 이병철 창업회장의 후계자로 유력해진 것은 이로부터 약 3년이 지난 뒤였다. 그룹 내 자신의 미래조차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반도체 산업의 가능성에 과감하게 투자한 것이다.</p> <p contents-hash="bf61ce15220cda4b1f26e4846c46302f9ef315c1ef8d4443e76ae1131787810e" dmcf-pid="4I1d41oMlj" dmcf-ptype="general">이건희 선대회장의 동창인 조태훈 건국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이병철 창업회장이 반도체 사업 진출을 논의하기 위해 회의를 주재했을 당시 삼성 사장단의 약 3분의 2가 반대했다.</p> <p contents-hash="494f97817231bdbdbc4b44b8a77a24820fc56edccaa64145749a5b8cd2af1206" dmcf-pid="8CtJ8tgRWN" dmcf-ptype="general">한국반도체 인수 이후 삼성전자가 최초의 메모리 반도체인 64K D램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는 엔지니어들의 피와 땀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당시 부회장이었던 이건희 선대회장도 직접 발로 뛰며 기술 확보에 나섰다. 이건희 선대회장의 열정은 빠른 결실로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1983년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64K D램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p> <p contents-hash="446078c47f0123b8f547d6b9ef4c8f8f483ffd6a7fa635a69bd2daf6e346c33e" dmcf-pid="6hFi6Faeva" dmcf-ptype="general">회장 취임 이후에도 이건희 선대회장은 반도체 사업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계열사별 자율경영을 중시하면서도 반도체 사업만큼은 직접 챙긴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이건희 선대회장이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한 1987년은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거센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시기였다. 일본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생산능력을 확대하면서 D램 가격이 급락했고, 인텔 등 미국 기업들은 D램 사업에서 철수했다.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 이 체결됐고, 1987년에는 미국이 일본산 제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는 상황으로 확대됐다.</p> <p contents-hash="d4ff8b7fbc394f4150b569d7959a610fbd6665d1b4ce42995f407fd8befd1633" dmcf-pid="Pl3nP3Ndhg" dmcf-ptype="general">이는 삼성전자와 한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에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p> <p contents-hash="c026eeba670be338977cf536084c018898e9570edde0261430e0f1e4f0150ea2" dmcf-pid="QS0LQ0jJTo" dmcf-ptype="general">1985년에는 SK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가 64K D램 양산에 성공하며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후 금성반도체도 D램 개발과 생산에 나섰다.</p> <p contents-hash="a5fe329fa66811257d777e99dae0ca4a555b7f7a5640808afc9ab6ae3f19e434" dmcf-pid="xvpoxpAilL" dmcf-ptype="general">이 과정에서 삼성전자는 D램 셀 구조로 스택 방식을 선택하고, 6인치 웨이퍼를 선제적으로 도입하는 등 제조 공정에서도 위험을 감수하는 도전을 이어갔다. 이를 통해 일본 기업들과의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지속적인 투자를 뒷받침할 경영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1988년에는 삼성전자가 삼성반도체통신을 흡수합병했다. 이를 계기로 완제품과 부품 사업을 하나의 회사 안에서 운영하는 체제가 구축됐다. 허문명 작가의 책 '이건희 반도체 전쟁'에 따르면 이러한 중요한 기술적 의사결정에는 이건희 선대회장의 깊은 반도체 기술 이해도가 큰 역할을 했다.</p> <p contents-hash="0eb7d9d3d4a62dfd8149e4d5d4f382f3a6ef82fd5f67a20c5b3ed21287002960" dmcf-pid="yPjtyjUZhn" dmcf-ptype="general">그 결과 이건희 선대회장이 한국반도체 지분 50%를 인수한 지 약 20년이 지난 1992년, 삼성전자는 글로벌 D램 시장에서 세계 1위에 올랐다.</p> <p contents-hash="76f679ad684a74dacf0d8db02fc3c02705e169a380e239035962dcdcc58d5b7c" dmcf-pid="WQAFWAu5Ti" dmcf-ptype="general">이러한 성공 경험은 이듬해인 1993년 이건희 선대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을 계기로 삼성그룹 전반에 확산됐고, 삼성이 여러 사업 분야에서 세계 1위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p> <p contents-hash="826c8eb9e8f68a27d9d6542d9d876868dee6e11b1f40b464b480fe49cb2ea2be" dmcf-pid="Yxc3Yc71CJ" dmcf-ptype="general">이 과정에서 권오현, 황창규, 이윤우, 윤종용, 진대제 등 핵심 경영진과 기술 인재들의 역할도 컸다. 이건희 선대회장이 중시한 인재 중심 경영과 이를 통해 형성된 기업문화는 삼성 반도체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지금까지 1위 자리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p> <p contents-hash="52c22044468f8804f528dfb20b072e68a5cdb181d1cd0f03d2b369a02addcb55" dmcf-pid="GMk0GkztTd" dmcf-ptype="general">삼성전자에서 기술총괄 사장, 신사업팀장, 삼성종합기술원장 등을 지내고 SK하이닉스에서도 근무했던 임형규 전 사장은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서 성공한 데는 뛰어난 인재는 물론 정부의 지원까지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했다"며 "이건희 선대회장은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술자들을 모으고 강력한 팀을 만들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p> <p contents-hash="c965f10c011b41ac7c5da92efbe5564a088c23464c4c3141ad0166b3ca50078b" dmcf-pid="HEW6BWRfve" dmcf-ptype="general">[이덕주 기자]</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p> 관련자료 이전 "반도체는 타이밍 산업"…기흥·화성에 과감한 선제투자 10-19 다음 방미심위, 유산균 판매방송서 질병 치료 효과 암시한 CJ온스타일 '주의' 10-19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