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 할로웨이, 볼카노프스키에 가로막힌 '왕조'의 꿈 작성일 04-16 18 목록 <strong class="media_end_summary">[맥스 할로웨이를 말한다④] 페더급 전설이지만 한 명의 라이벌이 바꾼 운명</strong><table class="nbd_table"><tbody><tr><td><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47/2026/04/16/0002512251_001_20260416103121314.jpg" alt="" /></span></td></tr><tr><td><b>▲ </b> 맥스 할로웨이에게 알렉산더 볼카노프스키(사진 오른쪽)의 존재는 '천적' 그 자체였다.</td></tr><tr><td>ⓒ UFC 제공</td></tr></tbody></table><br>'블레시드(Blessed)' 맥스 할로웨이(35, 미국)는 명실상부한 UFC 페더급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누구보다 많은 경기를 뛰었고, 무수한 명승부를 만들어내며 양과 질을 모두 잡은 최고의 파이터로 꼽힌다. 압도적인 타격 볼륨, 지치지 않는 체력, 그리고 끊임없이 상대를 압박하는 스타일은 한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br><br>그렇다면 그는 체급 역사상 몇 안 되는 '왕조'를 구축한 챔피언이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오랜 시간 동안 페더급 최상위권을 지켜온 것은 분명하지만, 특정 파이터에게 세 번이나 패했다는 사실은 '지배자'라는 평가를 망설이게 만든다.<br><br>상대는 다름아닌 체급 역사상 최고의 파이터로 꼽히는 '더 그레이트' 알렉산더 볼카노프스키(38, 호주)다. 아이러니하게도 할로웨이는 2013년 이후 볼카노프스키에게 당한 3패를 제외하면 약 10여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페더급에서 패배가 없었다. 한 명의 라이벌에 의해 파이터 인생의 커리어가 완전히 바뀌어버린 흔치 않은 사례다.<br><br>어쩌면 무적의 챔피언으로 장기 집권했을지도 모를 선수가 단 한 명 때문에 '2인자' 캐릭터로 이미지가 굳어진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과거 라이트헤비급에서 다니엘 코미어가 존 존스에게 가로막혔던 사례, 미들급의 로버트 휘태커가 이스라엘 아데산야에게 밀렸던 흐름과도 유사하다.<br><br>결국 '왕조'는 개인의 능력만으로는 완성되지 않으며, 같은 시대 경쟁자의 수준에 의해 규정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실력이 빼어나야겠지만 어느 정도 운도 작용한다고 볼 수 있겠다.<br><br>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47/2026/04/16/0002512251_002_20260416103121351.jpg" alt="" /></span></td></tr><tr><td><b>▲ </b> UFC 페더급 역사에서 맥스 할로웨이의 이름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td></tr><tr><td>ⓒ UFC 제공</td></tr></tbody></table><br><strong>세 번의 맞대결, 스타일 충돌이 만든 결정적 격차</strong><br><br>할로웨이와 볼카노프스키의 3연전은 UFC 페더급 역사상 가장 수준 높은 타이틀 경쟁으로 평가된다. 결과적으로 세 경기 모두 볼카노프스키의 승리로 끝났지만, 할로웨이 또한 챔피언급 도전자로 손색이 없음을 보여줬다. 더불어 각 경기의 양상은 뚜렷한 전술적 차이를 드러냈다.<br><br>첫 번째 맞대결은 '압박형 볼륨 vs. 각도 중심 카운터'의 전형적인 충돌이었다. 할로웨이는 기존의 강점인 전진 압박과 타격 볼륨을 중심으로 경기를 풀어갔다. 하지만 볼카노프스키는 잦은 각도 변화, 집요한 로우킥, 그리고 짧고 정확한 카운터 스트레이트로 할로웨이의 전진 타이밍을 끊어냈다.<br><br>이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거리 통제권이었다. 할로웨이는 중·근거리에서 연타를 이어가야 위력이 극대화되는 스타일이지만, 볼카노프스키는 한 발 빠른 인아웃 스텝과 측면 이동으로 '연속 공격 구간' 자체를 허용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판정은 비교적 명확하게 볼카노프스키 쪽으로 기울었다.<br><br>두 번째 대결에서는 할로웨이가 분명한 조정을 보여줬다. 무작정 압박하기보다는 잽과 페인트를 활용해 상대의 반응을 유도했고, 로킥 대응에서도 일정 부분 성공했다. 경기 내용 역시 접전 양상이었으며 일부 라운드는 할로웨이가 가져갔다는 평가도 존재한다.<br><br>그러나 구조적 열세는 여전히 유지됐다. 볼카노프스키는 라운드별 포인트 관리에 능했고, 공격을 길게 이어가지 않으면서도 명확한 유효타를 남겼다. 반면 할로웨이는 타격 수에서는 앞섰지만, '판정을 뒤집을 만큼의 데미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 차이는 결국 결과로 이어졌다.<br><br>세 번째 맞대결은 사실상 격차를 확정지은 경기였다. 볼카노프스키는 초반부터 로우킥과 바디 공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할로웨이의 스텝과 체력을 동시에 제한했다. 동시에 레슬링 압박까지 병행하며 선택지를 줄였다.<br><br>반면 할로웨이는 이전 경기들보다 공격 빈도가 눈에 띄게 감소했고, 장기전에서 강점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 경기는 할로웨이 스타일이 완성형 테크니션에게 얼마나 취약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다.<br><br>결국 이 3연전은 단순한 승패를 넘어, '볼륨 중심 압박가 vs. 완성형 전략가'라는 스타일 대결의 결론을 제시했다. 그리고 동시에 페더급 세대 교체의 분기점으로 기록됐다.<br><br>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47/2026/04/16/0002512251_003_20260416103121401.jpg" alt="" /></span></td></tr><tr><td><b>▲ </b> 왕조에는 2% 모자랐을지 몰라도 할로웨이는 UFC 전체급을 통틀어서도 손꼽히는 레전드다.</td></tr><tr><td>ⓒ UFC 제공</td></tr></tbody></table><br><strong>끊임없는 발전 흐름 속 더욱 치열해진 체급 판도</strong><br><br>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경쟁의 의미는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볼카노프스키는 이후에도 다양한 파이팅 스타일의 도전자들을 상대로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며 장기 집권 체제를 구축했다.<br><br>타격, 레슬링, 경기 운영 능력까지 모두 갖춘 '완성형 챔피언'이라는 평가가 이어졌고, '페더급 역사상 최고의 선수(GOAT)' 논쟁에서도 중심에 서게 됐다. 최근 경기에서도 노련한 운영과 전략적 완성도를 앞세워 여전히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br><br>물론 할로웨이 또한 변함없는 경쟁력을 유지하며 상위권에서 활약 중이다. 최근에는 라이트급까지 병행하며 빅매치를 이어나가고 있다. 특유의 내구성과 경기 운영 능력, 그리고 팬 친화적인 스타일은 여전히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타이틀 경쟁에서는 반복적으로 결정적인 고비를 넘지 못하며, '최정상 문턱'에서 멈추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br><br>여기에 선수층이 두터운 체급의 특성상 전 챔피언 일리아 토푸리아(29, 조지아/스페인)를 비롯 쟁쟁한 강자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오고 있는 분위기다. 조금씩 전성기가 꺾여나가는 할로웨이 입장에서는 챔피언 타이틀을 다시 가져올 가능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br><br>즉, 할로웨이는 볼카노프스키에게 가로막혔고, 볼카노프스키 역시 새로운 세대의 도전을 받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이는 한 시대의 절대 강자가 등장하더라도, 결국 또 다른 흐름에 의해 교체된다는 격투 스포츠의 본질을 보여준다.<br><br>할로웨이는 여전히 페더급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 중 한명이다. 기록, 경기력, 내구성, 팬 영향력까지 모든 측면에서 시대를 대표했다. 수많은 명경기와 압도적인 활동량은 그를 단순한 챔피언이 아닌 '아이콘'으로 만들었다.<br><br>그러나 '왕조'는 단순히 오래 강했다고 해서 완성되는 개념이 아니다. 같은 시대 경쟁자를 반복적으로 제압하고, 명확한 우위를 증명해야 한다. 할로웨이는 거의 그 경지에 도달할뻔했지만, 볼카노프스키라는 존재가 마지막 퍼즐을 막아섰다. 먼 훗날 자신의 커리어를 돌아볼 때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을 대목이다.<br> 관련자료 이전 OK 읏맨 럭비단, 4명 살리고 떠난 故 윤태일 추모기금 모금 04-16 다음 서울 광나루 한강공원 국내 최대 14면 피클볼장 개장…와우매니지먼트 운영 04-16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