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배구 전성기 이끈 '돌고래 스파이커' 장윤창, 지병으로 별세(종합) 작성일 05-30 93 목록 <strong style="display:block;overflow:hidden;position:relative;margin:33px 20px 10px 3px;padding-left:11px;font-weight:bold;border-left: 2px solid #141414;">'스카이 서브' 창안한 고려증권 창단 멤버…국가대표팀서도 맹활약</strong><br><b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01/2025/05/30/AKR20250530080701007_02_i_P4_20250530143218186.jpg" alt="" /><em class="img_desc">대한민국스포츠국가대표선수회 회장으로 선출될 당시의 장윤창 경기대 교수<br>[연합뉴스 자료 사진]</em></span><br><br>(서울=연합뉴스) 이동칠 기자 = 1980∼90년대 한국 남자배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년의 '명스파이커' 장윤창 경기대 스포츠과학부 교수가 30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65세.<br><br> 장윤창 교수는 한국 남자배구 최고의 스타였다.<br><br> 1978년 인창고 2학년 때 최연소(17세)로 국가대표에 발탁된 그는 그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의 4강 진출에 앞장섰다.<br><b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01/2025/05/30/AKR20250530080701007_05_i_P4_20250530143218190.jpg" alt="" /><em class="img_desc">국가대표로 활약하던 시절의 장윤창(3번)<br>[연합뉴스 자료 사진]</em></span><br><br>이어 그해 방콕 아시안게임과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사냥을 주도했고,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br><br> 1983년 '조직력 배구'의 대명사인 고려증권의 창단 멤버로 참가해 현대자동차써비스와 함께 실업 배구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br><b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01/2025/05/30/AKR20250530080701007_04_i_P4_20250530143218193.jpg" alt="" /><em class="img_desc">고려증권 선수 시절 블로킹하는 장윤창(오른쪽)<br>[연합뉴스 자료 사진] </em></span><br><br>프로배구의 발판이 된 대통령배 원년 대회(1984년) 때 인기 선수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최우수선수(MVP)에 오르기도 했다. <br><br> 그의 활약을 앞세워 고려증권은 초대 챔피언을 비롯해 최다인 6회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br><b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01/2025/05/30/AKR20250530080701007_03_i_P4_20250530143218197.jpg" alt="" /><em class="img_desc">고려증권 시절 주포로 활약했던 장윤창(왼쪽)<br>[연합뉴스 자료 사진] </em></span><br><br>특히 왼손 아포짓 스파이커였던 그는 남자배구 처음으로 '스카이 서브'(스파이크 서브)를 선보였고, 활처럼 휘어지는 유연한 허리를 이용한 타점 높은 공격으로 '돌고래'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br><br> 장 교수가 남자 배구 '왼손 거포'의 원조로 이름을 날렸고, 이후 김세진 한국배구연맹(KOVO) 운영본부장과 박철우 우리카드 코치가 계보를 이었다.<br><br> 현역 은퇴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조지워싱턴대에서 체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체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모교인 경기대에서 스포츠과학부 교수로 활동해왔다.<br><br> 또 대한배구협회 강화이사를 거쳐 2011년 출범한 대한민국스포츠국가대표선수회 회장과 한국배구연맹 경기위원을 역임했다.<br><br> 그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을 정도로 철저한 몸 관리로 유명했지만, 병마를 피해가지 못했다.<br><br> 고려증권 멤버였던 박주점 한국배구연맹 경기위원장은 "장윤창 교수가 작년 말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 자택에서 투병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장 교수는 1980년 한국 남자배구를 풍미했던 최고의 스타였다"고 회고했다.<br><br> 고인의 빈소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차려졌다. 6월 1일 오전 5시 30분 발인 예정이다. <br><br> chil8811@yna.co.kr<br><br> 관련자료 이전 태권도진흥재단, 시범공연 '위대한 태권도' 89회로 늘린다 05-30 다음 남자 육상 400m 계주, 구미 아시아선수권 예선 1위…첫 금메달 도전 05-30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