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정 마라톤]8월 9일, 1936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제패 90주년의 출발점 작성일 08-09 37 목록 <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77/2026/08/09/0000622565_001_20260809081016365.png" alt="" /><em class="img_desc">▲ 손기정 선생이 1936 베를린 마라톤에서 1위로 경기장에 들어서는 모습. ⓒ손기정기념재단</em></span></div><br><br><strong>1936 베를린 올림픽 남자 마라톤 금메달을 획득한 손기정 선생의 대역사(史)는 켜켜이 쌓이고 있다. 손기정기념재단은 손기정평화마라톤을 2005년부터 이어왔고, 올해는 11월 15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 일대에서 대회를 앞두고 있다. 9일 선착순 접수를 시작했다. 이에 맞춰 손기정 선생이 이룬 업적과 의미를 대회 당일까지 새겨본다. </strong><br><br>[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한국 육상, 마라톤 역사에서 8월 9일은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날이다. '미라톤의 날'을 제정해도 될 정도로 금빛 영광이 찬란했던 하루다. <br><br>그 출발점은 손기정 선생이었다. 일본 식민지라는 고통과 설움 속에서도 손기정은 국내 선발전을 당당하게 1위로 통과한 뒤 여객도 아닌 화물 열차를 타고 신의주, 만주, 시베리아, 러시아 모스크바, 폴란드 바르샤뱌를 지나 독일 베를린에 도착했다. <br><br>일본이 남승룡을 떨어트리기 위해 최종 선발전을 치르는 만행 속에서도 손기정은 다시 1위를 차지하며 결격 사유가 없음을 알려줬다. <br><br>운명의 날은 8월 9일, 영상 30도를 넘는 고온의 날씨 속에서 손기정은 민족정신을 품에 안고 오후 3시(한국시간 오후 11시)레이스를 시작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기에 더 열심히 뛰는 것 외에는 수가 없었다. <br><br>초반 10km까지 포기자가 속출하면서 손기정에게는 더 중요한 레이스였다. 수분 공급도 제대로 되지 않는 극한의 레이스였지만, 오직 손기정에게는 결승선까지 조선을 위해 들어가야 한다는 의지밖에 없었다. <br><br>당시 손기정의 전략은 코스가 편도가 아닌 반환점을 끼는 것과 34km 지점 오르막, 37km 지점 마지막 오르막이 있는 것에 착안해 최대한 힘을 아끼는 것에 주력했다. 또, 오르막 적응에 역량을 집중했다. <br><br>우승 후보였던 후안 사발라(아르헨티나)와 치열한 경쟁을 하던 손기정은 기어이 그를 따돌리고 역주했고, 어니스트 하퍼(영국)를 뒤에 두고 달렸다. <br><br><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77/2026/08/09/0000622565_002_20260809081016412.png" alt="" /><em class="img_desc">▲ 반환점을 도는 손기정 선생과 영국의 어니스트 하퍼. ⓒ손기정기념재단</em></span></div><br><br>그래도 태양은 뜨거웠고 요즘처럼 카본화도 아닌, 두께가 10cm도 되지 않는 운동화를 신고 달려 발에 가해지는 통증은 더 컸지만, 오직 어려웠던 시절을 극복하자는 의지를 안고 뛰었다. 어머니부터 국어학자이면서 최초의 한글 타자기를 개발한 공병우 박사, 양정고 선배였던 이병옥 등 감사해야 할 인물들을 모두 생각하며 고독한 레이스를 펼쳤다. <br><br>레이스 중에는 물 한 방을 마시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던 손기정에게 '마지막 유혹'이 다가왔다. 40km 지점에서 적십자사에서 봉사를 나온 루이제 네프 부인이 물컵을 건넨 것이다. 잠시 고민했지만, 마시지 않고 입을 행구고 목, 얼굴에 바르며 견뎠고 10만 관중 앞에서 꿈에 그리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시간29분19초, 올림픽 신기록이었다. <br><br>이날의 기쁨은 하루 뒤인 10일 새벽에 서울과 일본 도쿄에 전해졌다. 일본이야 일장기를 달고 뛴 손기정에게 기뻐했지만, 우리는 달랐다. 일제에 억눌려 있던 한민족의 힘이 깨어남을 알려준 것이기 때문이다. <br><br>그렇게 손기정은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았고 광복 후 후학 양성을 위해 노력하는 사명 의식으로 이어지게 된다. <br><br>놀랍게도 56년 뒤 같은 날인 1992년 8월 9일, 손기정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몬주익 스타디움에서 '태극기 금메달'을 보게 된다. 황영조가 일본의 모리시타와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2시간8분47초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br><br>몬주익 언덕 내리막길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모리시타를 따돌린 뒤 결승선 앞에서 두 손을 크게 들고 환호하는 모습은 손기정의 한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자신이 베를린의 영웅으로 떠올랐던 날, 기대를 안고 바르셀로나에 갔고 환희를 맛본 것이다. 후배를 안아주며 기뻐하는 손기정 선생의 얼굴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해보였다. <br><br>그야말로 한국 마라톤의 날, 러닝 붐인 2026년 대한민국에 '베를린 마라톤 금메달 90주년'이라는 의미를 되새기기에 충분한 날인 8월 9일이다. <br><br> 관련자료 이전 알카라스 손목 부상 벌써 4개월째…US오픈서 복귀할 수 있을까 08-09 다음 응원문화 ‘에너지’ 맞춤훈련 ‘시너지’ [창간 38주년, AI경기 판을 바꾸다] 08-09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